묵상

새로운 피조물에게 구원은 시작입니다

최종혁 · 2024.07.03 · 고린도후서 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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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구원’은 ‘결말’ 혹은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어서 구원 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비행기표를 예매해두었으니 표만 잘 가지고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표를 보여주고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구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원 받았으니 천국 들어갈 때 표만 보여주면 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의 ‘삶’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것은 사실이고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을 그렇게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17절은 구원을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은 ‘시작’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즉 구원 받은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이 ‘시작’된 것처럼 구원 받은 자들은 구원 받은 순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새로운 신분이나 상태와 같은 것만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새로운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새로운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강권하여 어쩌면 남들이 미쳤다고도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진 삶, 우선 순위가 달라진 삶,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달라진 삶입니다.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이 달라진 삶입니다. 나를 잘 알던 사람이 “너 맞아?”라고 물어볼 만한 그런 다른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구원은 끝이 될 수 없습니다. 끝이라면 이전 것의 끝입니다. 나의 끝입니다. 그리고 새 것의 시작이고 그리스도의 시작입니다. 내 마음으로 진정 원하는 그것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더욱 원할 수 있기를 구합니다.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사랑에 화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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