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장은 메시야에 대해서, 특히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서 정말로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메시야는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2절). 하지만 그는 자기 백성의 가장 큰 필요를 채웁니다. 바로 그들의 죄를 담당하여 대신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4, 6절). 그렇게 하여 그들이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5절). 그는 아무 죄가 없지만 잠잠히 모든 고난을 당하고 악인 중의 하나처럼 취급을 받습니다(7, 9, 12절).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통해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12절),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합니다(11절).
그런데 이사야 53장을 유심히 보면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라고 표현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1절). 바로 메시야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3절). 그들은 그의 고난이 그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4절). 여기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회개할 것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민족적 회개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했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고, 그분은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나타내셨지만, 그들이 생각한 혹은 원했던 메시야와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사무엘에게 원했던 왕과 같은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전쟁에 앞장 서서 승리하게 하고, 다른 모든 나라를 그들 앞에 무릎 꿇게하는 그런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병을 고쳐주는 메시야, 먹을 것을 주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일반화시켜 말하자면, 그들을 이 땅에서 잘 살게해주는 메시야를 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죄를 드러내고 회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메시야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려고 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는 기뻐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에는 실망한다면, 우리도 메시야를 거절했던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메시야를 원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어떤 분이시냐가 중요하고, 내가 그 메시야를 그대로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을 위해서든, 그 이후의 삶을 위해서든, 메시야를 있는 그대로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의 한 구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