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참된 기쁨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최종혁 · 2024.02.21 · 마태복음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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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에 교회 뒷마당을 서성이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와서 같이 운동하시죠!”입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옷이 없네요.”
“아, 신발이 이렇네요.”

구두를 신고 축구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몸에 꼭 끼는 정장을 입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농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운동을 하려면
도움이 되는 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요한의 삶이 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잘 살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할 일만 하고 간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의 삶은 가장 잘 산 삶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준에서 말입니다.

내 삶이 어렵고 힘든 이유는
구두에 정장에
휴대폰까지 주머니에 넣고서
운동을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싶습니다.

내 삶의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그 사명을 방해하는 군더더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것은 죄의 문제,
어떤 것은 방해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버려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1)

요한도 이 허다한 증인 중 하나입니다.
나도 그런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내 앞에 있는 이 경주를
인내로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20 마 13:44-58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기쁨을 추구하는 선택을 합니다.
원래 그런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기쁘지 않은 것이
거룩하고 경건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종교’가 바로 그런 착각 위에 세워진 허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그것으로 더 거룩해질 것처럼
더 경건해질 것처럼
더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행복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이 말씀에서 우리는
소유를 다 파는 것에만 집중해서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를 놓칩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소유를 다 파는 것은 결과입니다.
이 사람은 그냥 소유를 판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있습니다.
동기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는 것이고,
그 보화가
그의 모든 소유보다
더 큰 기쁨을 그에게 주었다는 점입니다.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산 사람은
작은 기쁨을 버리고
더 큰 기쁨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대체되어야 합니다.
버리는 것만 생각하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것이 좋아보여서 그렇습니다.
여전히 그것이 또 다른 기쁨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기쁨이 더 큰 것으로 대체되어야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천국으로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 되어
이 기쁨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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