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44절).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일단은 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자기 모든 소유의 가치보다 그 감추인 보화의 가치가 더 크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이 사람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파는 것이지만 슬퍼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그 모든 소유보다 더 가치있는 보화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에 대하여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른 사람의 밭에서 보화를 발견했으면, 그 사실을 주인에게 알려야지 그렇게 하지 않고 밭을 사는 것은 속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비유를 읽고 있습니다. 비유에는 비유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가치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당연한 반응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뿐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보다 가치있고, 당연히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고 천국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극히 값진 진주”의 비유도 말씀하셨는데,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45-46절).
밭에 감추인 보화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산 사람을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무 소유도 없이 밭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연한 선택을 했고,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보화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의 바울의 고백이 정확히 이 비유에 일치하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유익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보다 그리스도가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의 부모와 친구가 있었다면, 바울을 뜯어 말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느냐고,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았던 바울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해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며 지혜로운 선택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도 발견한 보화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보화의 가치를 알수록 더 커질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알아 내 삶에 그 분으로 인한 기쁨이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