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예수님은 5장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바로 ‘죽임 당한 어린 양’입니다(6, 9, 12절). 죽임 당한 어린 양은 우리가 ’영광스러움’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의 그림을 놓고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보라고 하면 죽음, 패배, 수치와 같은 것들이 오히려 주를 이룰 것입니다.
사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그 모든 부정적인 단어들은 관련이 없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그 이유와 결과는 이렇습니다.
계 5:9–10 ...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고 이제 살아계시지만 놀랍게도 여전히 그 죽임 당하심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각 사람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께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교회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어떠해 보이든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사신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입니다. 이 땅에서 왕 노릇할 자들입니다. 이것은 구원 받고 난 후 우리가 열심히 이루어 내야할 성과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이루신 결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계 5: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1절을 보면 이렇게 큰 음성으로 찬양하는 존재는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정말 그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목소리 높여 부를 자들은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그 놀라운 일을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우리는 그 놀라운 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하늘에서 이 찬양을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부를 때 가장 중심에서 가장 크게 찬양해야할 자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며 지금부터 영원까지 세세토록 부를 찬양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저 하늘까지 부를 찬양입니다. 내 입으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고 내 삶으로 그분을 증거하는 우리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