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언제나 달갑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한 고난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사도들은 주를 위해 고난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이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했고, 실제로 그것이 논리적으로 맞다는 것도 알지만, 고난에 대한 첫 반응이 그렇게 나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고난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정말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들을 여러가지 말해주는데,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는 그리스도의 위로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5절). 바울은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위로도 넘쳤다고 말합니다. 마치 고난 받는 만큼 위로도 받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고난을 경험할수록 더 많은 위로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고난이 없다는 말은 위로 받을 일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8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힘에 겨운 고난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신다고 했는데, 마치 그 이상의 시험을 주시는 것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그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즉, 고난 중의 위로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8-10절의 표현을 보면 바울은 환난 중에서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혹 그렇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기에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서 더욱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난은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다른 성도가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고난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위로를 주시고 그 위로를 통해 다른 고난 받는 자도 위로하십니다(6-7절). 같은 소망을 품게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고난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성도에게 우리는 더 진실된 위로를 전할 수 있습니다.
기도도 실제적인 도움입니다(11절). 기도는 다른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할수있는 최후의 보루같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서 실제적인 도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에서 항상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성도들에게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오히려 더 우리로 기도하게 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전화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여러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기도도 그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실제였습니다. 그의 고난이 실제였기에 하나님의 위로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성도로부터 오는 위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고난도 실제였기에 그들의 위로도 실제였습니다. 기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달갑지 않은 고난이 사실 우리 삶에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기도의 능력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다른 성도도 도우며 친밀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고난을 통하여 더욱 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