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는 자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고 죄인들과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준에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하는 자들과 같이 식사하며 깊은 교제를 나눴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죄라고 생각하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11절). 그들의 기준에서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그 반대가 진리임을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12절) 의사가 함께 해야할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영혼의 병인 죄를 고치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함께 해야할 사람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3절).
바리새인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리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민족을 배신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심판 받아 마땅한 자들이고, 이들을 비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리도 구원 받을 수 있고, 구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에 동참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그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은 이미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쓸 데 없는 것처럼, 진짜 의인에게도 예수님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들이 있고(세리, 죄인들),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들이 있을 뿐입니다(바리새인, 서기관 등).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병든 자입니다. 모두에게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그 예수님이 필요함을 알고 그 자리에 함께 해야했습니다. 나는 의롭다는 생각을 버려야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죄의 병을 고쳐주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위로해 주는 예수님, 건강하게 해주는 예수님, 부자되게 해주는 예수님 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예수님은 그런 예수님이 아닙니다. 나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 구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