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제 모세를 통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준비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근심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이기에…?”라며 묻습니다(11절). 두려움과 겸손에서 나온 말일테지만, 사실 꽤나 잘못된 질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모세가 “누구”여서 부르고 계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이것이 중요했습니다. 모세는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수학으로 따지면, 모세의 능력은 100 일 수도 있고 10 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무한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드러내신 이름이 이 사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하나님은 무엇에 의해 존재하게 되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에 의존해서 살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자족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영원히 그러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런 모세를 통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누구이기에”라고 묻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네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너는 나를 어떤 하나님으로 믿고 있느냐?” 무엇이든 나에게 확신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