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습니다(4-6절).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눅 19:10). 그리고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마 28:19).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만 이보다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절). 1절 말씀만 읽어보면 일반적인 기도에 대한 명령 같지만 이어지는 말씀의 맥락을 보면 분명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일차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우리가 기도에서 제외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깝게는 우리의 구원 받지 않은 가족이 있습니다. 항상 기도제목에는 있지만 실제로 기도는 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은 기도를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 받지 않은 상태가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한번 더 기도하거나 한번 덜 기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지니 점점 기도에서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에서 쉽게 제외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힘들고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기도를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 대한 기도만 하기 쉽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선한 삶을 사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맡고 있는 중요한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좋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디모데전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는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런 지도자들을 위해서 성도들은 기도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에 대해서 자신의 정치 철학에 따라 그들을 찬양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도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지 받지 못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정말 구원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구원 받고 혹은 구원 받지 말아야할 것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 원하신다면 나도 그러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에서 제외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고, 오늘은 특히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