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기뻐할 소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병에 대한 치료제의 소식은 당연히 기쁜 소식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거나 일부러 부인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소식이고 혹은 더 나아가서 불편하거나 불쾌한 소식이 되기도 합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할 운명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용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렇게 말하니, 복음이 불편하고 불쾌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단지 그 복음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핍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들을 때 바울이 전한 복음은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첫째로, 유대인들은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을 이방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복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듣기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율법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슬렸던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에 많은 이방인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같은 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으려고 모여들자,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해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했습니다(45절). 이런 유대인들을 보며 바울은 그들이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했다고 표현했습니다(46절). 그들이 스스로 복음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방해에도 관계없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48절). 정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핍박 중에서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에 충만했습니다(52절).
복음을 전할 때 우리에겐 바울과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듣는 자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 반응으로 인해서 낙심이 되고 기운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전해진 복음을 통해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확신은 그것입니다. 모두가 복음을 듣고 믿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선택한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 확신으로 낙심하거나 두려움 없이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