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읽다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물론 ‘교회’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명령들은 거의 항상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를 돌아보고 피차 권면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더욱 그런 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해야할 것을 강조한 후에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가 서로를 위해 살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살펴야 합니다. 히브리서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함께 교회 안에 있고 함께 섬기고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그 사람이 태어난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합니다. 태어난 적이 있는 것이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라면 그 사람은 지금 죽어있는 사람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 사람은 사실 태어난 적이 없었다고 말해야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얻은 자는 다시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다고 해서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당연히 그곳에서 만날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쓴 뿌리가 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쓴 뿌리는 어떤 성도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미움의 마음보다는 다른 성도들까지 더럽히는 완악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29:18-19에서 백성 중에서 생겨날 “독초와 쑥의 뿌리”에 대한 염려를 표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에서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마음인데,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죄 중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도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하지만 쓴 뿌리는 그런 죄를 정당화하고 회개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도 유혹에 빠지게 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이런 쓴 뿌리 같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게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살피고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셋째는 에서와 같이 음행하거나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펴야 합니다. 저자는 배교자의 전형적인 예로서 에서를 제시합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결국 그것을 빼앗겼을 때 다시 얻고자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비극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는 서로 돌아보고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일은 교회를 돌보고 인도하는 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특별히 더 이런 일에 힘써야할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언제나 이런 일들을 ’서로‘ 해야할 일로 명령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다른 성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살펴야 합니다. 돌봐야 합니다. 내 믿음만 지키면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이 길을 가야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기억하여 흔들리지 않는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나와 내 주변의 성도들을 지켜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