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부끄럽지 않은 일꾼

최종혁 · 2024.11.01 · 디모데후서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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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21절). 그릇은 그 용도에 따라 쓰임이 다양하지만 깨끗하지 않은 그릇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두셔서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시지만, 그릇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합당하게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불의에서 떠나야하고(19절) 대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22절). 스스로 그렇게 할 뿐 아니라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그렇게 해야합니다(22절). 교회는 이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자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야 함께 할 때에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무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으면 함께 해봐야 넋두리의 장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넋두리도 필요하긴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 중에 바울은 특별히 ‘말씀’과 관련하여 디모데(하나님의 일꾼)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강조했습니다. 디모데의 경우 이 영역에 있어 더 유의해야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로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15절). 이것이 가장 우선 순위에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24절).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자기 삶에 적용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남에게만 적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답답하기도 하고 논쟁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청년의 정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정욕이 포함되겠지만, 여기서는 바로 그런 정욕입니다. 싸우고 싶은 정욕입니다.

그런 정욕에 따라 말씀을 가르치면 말씀은 바르게 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온유하게” “참으며” 가르쳐야 합니다(24절). 유익하지 않은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14절). 내가 하는 말이 맞는 말(진리)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태도도 맞아야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14, 25절). 온유와 인내는 진리의 타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짓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막아야 하고(14, 16), 거짓을 말하는 자를 훈계할 필요도 있습니다(25절). 그것이 정말 그들을 사랑하는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말싸움을 통해 그를 굴복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가 회개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합니다(25-26절).

하나님은 교회에게 진리를 맡기셨기에 우리는 진리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그에 따라 살고 또한 그 진리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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