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영원을 사모할 때 찾는 삶의 의미

최종혁 · 2026.06.26 · 전도서 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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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저자는 삶에 대해서 비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는 마치 지금 삶이 전부인 것처럼 이 삶에 소망을 두고 그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 자체에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삶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삶을 우리에게 주신 창조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자이시고,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11절). 비록 지금 우리는 죄로 인해서 최초에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세우신 창조의 질서가 무너진 세상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아름답게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대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영원한 하늘의 시각으로 찰나인 이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하면 매일의 일상은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13절). 거기에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12절).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의미를 지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이 땅에서 의미있는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의미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의미있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11절). 이 마음을 따라갈 때 영원하지 않은 이 땅에서의 삶이 의미 있습니다. ‘보이는 게 전부! 죽으면 끝!’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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