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매우 지혜로웠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많은 부와 권력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시험삼아” 자신을 “즐겁게” 해봤다고 말합니다(1절). 즉, 쾌락에 대한 실험을 진행해봤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실험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험이 아니라 조금의 쾌락이라도 누려보려면 평생을 수고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고 그래서 실험을 해봤다고 말합니다.
10절을 보면 솔로몬은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엇이든지”에 해당되는 것들이 2절부터 언급되어 있는데, 웃음과 술, 사업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는 향락을 즐겨봤고, 혹은 더 생산적인 즐거움을 위해 사업을 크게도 해봤다고 합니다. 4-6절의 표현을 보면 그는 자신을 위한 에덴 동산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의 에덴 동산에는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고, 처첩도 많았습니다(8절). 이 모든 즐길 것들로 인해 그 자신은 피폐해졌던 것이 아니라 그는 여전히 지혜로웠습니다(9절).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진짜 즐거움을 주고 만족을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고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11절). 이 모든 것 자체가 재미 없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순간의 재미와 쾌락은 있었지만, 삶을 생각해 볼 때는 의미가 없게 여겨진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쾌락 보고서의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진짜 재밌는 것이 없었어서 그럴까요? 요즘처럼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게임기도 없어서 그랬을까요? 멋진 스포츠카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자기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은 모두 해봤습니다. 그것들이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삶을 솔로몬은 오래전에 살았고, 그 결과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무익하다고 단언한 것입니다.
오늘날 쾌락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은 결국 이미 솔로몬을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실패라고 결론내린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삶입니다. 결과가 뻔한데, 내가 경험하기 전에는 모르겠다며 그 실패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멈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참된 기쁨과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근처에서 기웃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