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영원에 남는 지혜의 시작, 여호와 경외

최종혁 · 2026.06.15 · 잠언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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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창조자, 주관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제대로된 지식이 시작됩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고 심판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빼고서 세상을 설명하려면 어느 것도 바른 설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쏟아진 날 밖에 나가니 눈사람이 있었다면, 어제는 없었던 그 눈사람의 존재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내가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눈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설명을 하려고 한다면,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 낸 기상천외한 방법은 올바른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이나 심리학이 참된 지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일단 하나님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관찰한 사실이나 실험한 결과가 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눈 사람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나 동일합니다. 문제는 그에 대한 설명입니다. ‘과학적’이라는 설명이나 ‘심리학적’이라는 설명은 그 자체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객관적 사실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참된 지식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실용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그렇게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를 사람들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악한 자들이 정확히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통해 온갖 보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13절). 실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이 동일한 ‘실용성’이라면 우리도 결국 그 길을 따라가 함께 그 길이 인도하는 목적지인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19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실용성이 아니라 하늘에서의 실용성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정말로 영원의 삶에 무엇을 남기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의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정말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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