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4: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저자의 이 표현은 참 흥미롭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소식(복음, 말씀)’이 모두에게 현실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을 때, 그 말씀은 그들에게 어떤 유익도 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은 말씀한 하나님께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듣는 자에게 있었습니다. 듣는 자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눈 앞의 거대한 바다가 갈라져서 마른 땅으로 바다를 건너고 그들을 뒤쫓아 온 바로의 군대는 그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먹을 수 없는 쓴 물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무를 던졌을 때, 쓴 물이 단 물이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확히 6일 동안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7일에는 내리지 않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세가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내리면 패하던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을 충분한 이유, 증거,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믿음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약속의 가나안 땅 정탐을 다녀온 10명의 정탐꾼은 절대로 그 땅의 백성을 이길 수 없다고 보고했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능히 이길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그동안 특별한 경험을 해서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두 같은 경험을 했지만 오직 두 사람만 그 모든 것들을 믿음과 결부시켰던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믿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경험은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믿음을 시험하는 때가 되었을 때, 믿음을 가진 자는 순종으로 반응했고 그렇지 않은 자는 불순종으로 반응했습니다.
평소에는 어쩌면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간 중간 하나님께 불평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순간이 되면 하나님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참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들은 것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던 사람은 결국 불순종으로 그 믿음 없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특별한 경험이 없어서 믿지 못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경험이 있으면 난 무조건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이 순종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이 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빌 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