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는 4장 13절의 말씀은 정말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의 최선조차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아론의 반차를 따른 연약한 대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전한 대제사장이신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자기를 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신 거룩한 분으로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고난을 받아 온전하게 되시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고 함께 서십니다. 14절의 “승천하신”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들)을 뚫고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6:19-20은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잘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백성들을 대표해서 혼자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리로 “앞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뒤따라 들어갈 수 있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이 땅의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의 지성소입니다. 하늘을 뚫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신 그 곳으로 우리 앞서 혹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이지만, 자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과 함께 선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행위를 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더러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과 의로움을 보십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누구도 나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특히 부모님은 많을 것을 나를 대신 해서 해주실 수 있고 그렇게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실 수 있지만, 부모님의 구원이 나의 구원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혼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그 자리에 계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나의 대제사장이라면 그런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제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가 됩니다. 그래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장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 이제는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된 것입니다. 가장 두려워야할 그 곳이 이제는 가장 평안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된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특권을 받았는지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 특권은 앞으로 언젠가 누리게 될 특권이 아니라 지금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지금 우리는 확신하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를 얻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감사하며 항상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