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말 그대로 법이기 때문에 어떤 규례는 그대로 지켜야 했지만, 어떤 규례는 더 넓은 원리를 최소한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죽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때려도 괜찮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더 넓은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율법의 원리 혹은 정신보다 표면적인 행위에 더 집중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행위 중심의 종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주제의 설교 중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계명을 언급하십니다(43절). 이 율법도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표면적인 의미만 취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원수는 미워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사랑해야할 이웃이고 누가 미워해야할 원수인지를 놓고 논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율법교사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눅 10:29). 이 질문에 예수님은 사실상 “누구나”라고 답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라는 명령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더욱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절).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45절).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는 다르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46-47절).
결국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드러내신 것은 하나님의 온전함입니다(48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기와 같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른 모든 우상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의 근본적인 정신입니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율법에 대한 말씀을 시작하면서 하셨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7). 예수님은 율법의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그 의미대로 사셔서 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인으로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그 완전하신 의를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갑니다. 그렇게 율법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세상 가운데 전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