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성도와 환난에 대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로 환난에 대해서 성도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3-4절). 환난을 만날 때 우리는 쉽게 움츠러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성도로서 더욱 믿음에 따라 순종하고 더욱 사랑할 수 있습니다. 환난으로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대적이 원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환난 가운데 인내하고 이기는 것은 겨우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믿음에 따라 사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렇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성도의 환난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표입니다(5절). 환난을 받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에 따라 살 때 성도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요 16:33). 즉, 환난은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성도의 환난에 대해서 공의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5-9절). 하나님의 공의는 항상 두 측면이 있습니다. 상과 벌입니다. 구원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경험하여 알게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마치 경찰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안심하게 되는 일인 것과 같습니다. 죄를 범했다면 경찰의 존재는 두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경찰의 존재는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환난을 받는 자라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안식으로 그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환난을 받게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형벌로 그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다르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모든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십니다(10-12절). 이것이 환난 중의 성도가 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지만 그 전에도 환난 가운데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성도의 삶을 통하여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어쩌면 주를 ‘위해’ 환난을 당하는 것이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은혜이기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심이 합당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 영광에 우리를 참여하게도 하십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지지만, 사실 성도로서 이 땅에서 환난이 없는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성도로서 합당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환난 자체가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부르심에 합당한 삶에는 반드시 환난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순종으로 기꺼이 환난 받기를 선택하고 모든 것으로 그리스도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지금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과 교회들로 모든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