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교회는 휴거 되었고 자신들은 주의 날(심판의 날) 가운데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했습니다(2절). 거짓 교사들이 그들을 그렇게 미혹했기 때문이었습니다(3절).
그래서 바울은 이 오해를 바로 잡습니다. 그들은 지금 주의 날, 즉 심판의 때를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대적하는 자라 불리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자신을 스스로 높여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그 때에 있을 일들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3-4절).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바울이 이 사실을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가르쳤음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5, 15절). 그들도 바른 교리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그들에게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거짓 가르침이 들어왔고 그것이 그들의 상황과 잘 맞는 것 같았을 때에 그들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에 미혹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거짓이 더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릴 때,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 상황에 잘 맞는 것 같을 때 사람들은 거짓에 쉽게 미혹됩니다. 멀리서 보면 어떻게 그런 이단에 저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빠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거짓이 더 말이 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데, 거짓은 그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바꾸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세 분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우니 예수님은 사람이셨다고만 하거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라고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성경의 진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진리를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것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논리를 만드신 것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비논리적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논리를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거짓에 미혹되는 이유는 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사탄의 거짓에 미혹되었던 이유와 동일합니다. 그것이 더 말이 되는 것 같고 내 상황에 잘 맞는 것 같고 나에게 더 좋기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것을 분별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른 진리가 바른 믿음, 바른 사랑, 바른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바른 진리 위에 굳게 거하고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