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요셉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인 창세기 38장에는 ‘굳이 왜 이런 내용이?’라는 의문이 생기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면서 요셉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려고 하는 찰나에 그와 전혀 관계 없는 것 같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이야기 속의 유다는 부정하고 불의합니다.
이런 유다의 모습은 이어지는 이야기 속의 요셉과 대조가 됩니다. 요셉은 정결했고 불의한 일을 당했지만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요셉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 유다의 이야기는 요셉의 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유다의 죄를 드러내어 요셉의 의를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역할을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야곱의 예언적 축복에서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됩니다(8절). 마치 요셉에게 할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8절)라는 말은 정말로 요셉에게 해당되었던 말인데, 그것이 유다에게로 옮겨갔습니다. 10절의 말씀은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합니다. 야곱은 유다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고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후에 밝혀지지만, 이는 궁극적인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바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9절, 계 5:5참고) 예수님이십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유다의 감추고 싶은 죄인 ‘다말’이 언급됩니다(마 1:3). 유다가 다말을 통해 낳은 아들인 베레스의 자손으로 다윗 왕이 태어났고, 후에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가 이 혈통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이런 면에서 유다는 큰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유다의 이야기에게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두드러집니다. 유다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왕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앞에 무릎 꿇을 때에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오늘의 한 구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