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낮아지심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하심

최종혁 · 2026.06.02 · 시편 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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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3편은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의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무리가 됩니다(1, 9절). 여호와의 종들에게(1절), 이제부터 영원까지(2절),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3절),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합니다(1-3절).

찬양하라는 명령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1-3절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사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이름”은 여호와의 “어떠하심(속성)”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찬양 받으실만한 분이심을 명령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면에서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실까요? 하나로 말하자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둘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높으신 위대하심과 스스로 낮추신 위대하심 때문입니다.

4절은 먼저 하나님의 높으신 위대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하늘보다도 높으십니다. 어떤 피조물과도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다스리십니다(5절). 다른 것들보다 뛰어난 것들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고 칭찬을 받기에 합당하다면, 하나님은 그런 감탄과 칭찬의 궁극에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분이 가장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함은 바로 이런 측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위대함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스스로 낮추시는 위대함입니다(6절).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 먼지 더미까지, 거름 더미까지 자신을 낮추십니다(7절). 그곳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세워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8절), 자녀 없는 자를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9절). 한마디로,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낮추십니다. 스스로 낮추셔서 낮은 자를 찾아오시고, 낮은 자를 높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위대함을 드러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큼 하나님께서 낮아지고 낮아지셨던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빌 2:6-8). 그리고 그러하기에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낮아지심의 위대하심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구원을 경험한 자로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한 구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시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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