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바울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행 24:27). 더 좋아지지도 않았고 더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유대 총독은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뀌었지만 바울은 여전히 이유 없이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바울로서는 답답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좋아지든 나빠지든 어쨌든 상황이 진행되면 좋으련만, 상황은 지지부진 멈춰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심도 그대로였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고, 또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면 이제는 바울을 신경쓰지 않을 법도 한데, 그들은 여전히 바울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25:3).
결국 베스도는 바울을 불러내고 유대인들의 말을 들어 보았지만 그들의 말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바울을 정죄할만한 어떤 결정적인 증거나 증언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바울도 더 이상은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습니다(10-11절). 그래서 결국 내려진 결정은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였습니다(12절). 그렇게 마침내 바울의 로마행이 결정됩니다.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 2년 이상을 구류되어 있었던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좌절과 우울증으로 고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해야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행 23:11) 어디 계신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빠지고 시야가 좁아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썼습니다(행 26:28-29).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해야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라고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행 23:11). 로마에 갈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해야했고 바울은 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로마에 가서도 가택연금 상태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음을 사도행전의 끝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죄수로 갇힌 상황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바울이 생각했다면 그는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로마에 가게 된 것으로 인해 좌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복음 전하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바울과 정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내 상황에 대한 몰입이 너무 심해서 복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시간이 길어져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조차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전도는 은사 있는 소수의 어떤 사람만 하는 일로 생각하여 나와 관계 없는 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핑계는 언제든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 먹으면 그 역시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감옥에 있어도 복음은 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순종의 문제이며 사랑의 문제입니다. 명령하신 주님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사랑의 문제입니다. 쉽지만은 않지만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이 귀한 사명에 사랑으로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