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는 바울의 말은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기에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은 특히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돌에 맞아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에 버려지기도 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애써 이런 핍박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의로운 일을 하면서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그를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10절). 교회를 박해했던 그를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특별히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이 사실은 바울로 더 많이 수고하게 하였습니다. 더 많이 사함을 받았기에 더 많이 수고했던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부활의 소망입니다(32절). 복음을 전하다가 실제로 죽더라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 죽음은 오히려 그에게 유익한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그는 “인생 뭐 있어? 먹고 마시자!”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에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날마나 위험을 무릎쓰고 죽음도 각오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이후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바울로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이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떠나도 별 문제 없는 그야말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19절 말씀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우리는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리 불쌍한 삶이 아니라면,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이 영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을 소망하며 날마다 죽고 있지 않고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이 세상의 죄악된 삶도 즐기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불쌍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의 기준에서는 복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뭐가 됐든 편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활의 소망이 무색하지 않게 지금의 삶이 바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