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 1절의 질문은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아담과 하와만 있었던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셨던 곳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후에 그들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며 예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1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엄밀히 말하면 “없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은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고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2절). 온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도 거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특징이 드러납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모욕하지 않고 자기 권리와 힘을 악용하지 않습니다(3절).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존경합니다. 약속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꼭 지킵니다(4절).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5절). 이런 사람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기준은 절대적이어서, 어느 정도만 이 기준에 부합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1절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위의 기준에 온전히 부합한 삶을 살고 의인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그 길을 만드셨습니다(히 10:20). 그래서 우리는 완전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10:22).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이 기준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먼저는 내가 할 수 없는 이 일을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 기준을 통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이 모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를 자이고 그 성산에 사는 자입니다.
오늘의 한 구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