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은 참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당장 내가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지금 무엇을 하고 안하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소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금 당장에 큰 문제가 있더라도 소망이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망은 그렇게 생사를 좌우할만큼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소망’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순교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 힘든 삶을 삽니다.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도 고민하고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자책과 후회하는 일도 많습니다.
간단한 거짓말로 끝날 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큰 일을 만들기도 합니다. 손님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때도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저 사람도 곤란해질까봐 그냥 내가 손해보고 말지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회사에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많습니다. 믿음 때문에 은근한 조롱과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끝나지 않는 내 안의 죄와의 싸움에 지치기도 합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런 삶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 이유는 결국 소망 때문입니다. 만약 소망이 없이 이렇게 이 땅에서 살고 끝이라면 이런 삶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소망이 90% 정도 현실이 된다고 하면 어떨까요? 50%라면 어떨까요? 혹 10%라면 어떨까요? 이 소망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률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이 삶을 선택할 사람은 적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럼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소망이 현실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믿음을 버리려고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확실함을 생각해 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 소망의 확실함은 100%입니다. 혹시라도 정말 예상 못한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99.99라고 말해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맹세로 인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사 46: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가장 크신 분이시고 상황에 따라 그 뜻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초에 이미 종말을 알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기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스스로도 그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망은 100% 현실이 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소망이 우리 영혼의 닻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이 소망이 우리로 흔들리지 않게 하고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만 바라보면 인내하고 견딜 힘이 없습니다. 앞을 바라봐야 합니다. 앞서 가신 예수님, 그분 안의 소망을 굳게 붙들고 감사와 확신으로 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