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 없는 양심

최종혁 · 2024.09.03 · 사도행전 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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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양심입니다. 동물은 자기가 직접 사냥을 하든 남이 사냥한 것을 빼앗든 어쨌든 먹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쉽게 선택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주신 법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롬 2:14-15). 일반적인 경우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는 동일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사실 특별한 설명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그게 맞다고 다들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두 모여서 합의를 한 것도 아닌데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입니다.

사람 안에 죄가 들어 왔을 때 (감사하게도) 죄가 양심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양심의 내용에도 영향을 주었고, 양심의 민감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일회적 사건이라기보다 지속적인 사건입니다. 많은 시간 거짓에 노출된 결과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데 양심에 거리낌이 있습니다. 그것을 차별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이유입니다. 양심의 내용이 죄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한편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악한 말을 하는 것에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습니다. 양심의 민감도에 죄가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렇게 양심은 더러워지기도 하고 화인 맞기도 합니다(딛 1:15; 딤전 4:2). 그래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두 가지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적으로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는 노력입니다. 다른 어떤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양심이 더러워지지 않고 화인 맞지 않도록 지키는 노력입니다. 양심 자체가 더러워지고 화인 맞아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의미 없어지거나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두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또한 양심 자체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워야 양심이 바로 섭니다. 깨끗해 지고 민감해 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여 알려 줍니다. 내 생각이나 내 기분이 기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되어 그렇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런 양심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차라리 몰랐을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의 연약함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지혜와 용기를 구하며 양심에 따라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힘쓴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삶이 쉬워서도 아니고 효율적이어서도 아닙니다. 그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 삶을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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