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 시리즈는 2026년 위드바이블 캠프 주제 설교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육신을 입고 살지만, 영의 세계를 믿음으로 보고 알게 된 자들이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의 사랑, 택하시고 속량하시고 보증하시기 위하여 쏟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열심에 감격하며 찬송한다. 또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며, 사랑 가운데 함께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의욕이 없는 이유는 뭘까?
영적인 세계에서 막강한 전력을 갖춘 대적이 열심을 가지고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기 때문이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래서 의욕을 되찾는 일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12절). 그들은 통치력과 권세를 가진 강력한 상대로 세상을 온통 장악했으며, 하늘에 속한 영적 세력이다.
우리의 싸움이 이러한 대적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그에 합당한 병기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0-11절).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마귀로부터 보호하고 대적할 수 있도록 완전 무장할 수 있는 갑주(πανοπλία)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원수와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13절)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입으라”와 “취하라”는 모두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무장할 것을 주셨고 무장하라고 거듭 명령하셨다. 앞으로 언급할 병기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로 마귀를 “능히” 대적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호시탐탐 의욕과 열심을 빼앗는 원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방어용, 공격용, 지원용 병기가 무엇인지 각각 살펴보자.
방어용 병기: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14-17절까지 총 여섯 개의 병기가 나온다: 허리띠, 호심경, 신, 방패, 투구, 검. 이 중에서 검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방어용 또는 보호용 장비다. 영적 전쟁을 위한 갑주이기 때문에, 이런 실물 병기를 착용하라고 권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무기가 갖는 특징은 영적 전쟁에 필요한 영적 자원 즉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이 각각 어떻게 적절히 사용되어야 할지를 비유적으로 분명히 가르쳐 준다.
① 진리의 허리띠: 고대 시대 병사가 착용하는 허리띠는 입고 있는 모든 갑주를 꼭 붙들어 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일 허리띠가 없다면, 갑옷이 계속 흘러내리거나 빠지게 되고, 그것을 붙잡느라 손에 쥔 방패와 검으로 제대로 방어 및 공격하는 일에 막대한 지장을 겪는다. 성경은 영적 전쟁에서 “진리”가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한다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14절)
여기서 명령은 “서라”이다. 부정 과거형으로 긴급하게 신속히 할 것을 요구한다. 전장에서 느긋한 때는 없다. 막간이 생기면 언제든 전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정비를 빠르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효과적으로 원수와 맞서 싸우려면, 반드시 틈틈이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나머지 병기들을 생각해 보라. 모두가 반드시 진리로 정비해야 할 무기다. 마귀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수만 가지 거짓 길을 제시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오직 객관적인 진리인 “복음”에 나타난다(롬 1:17). 세상에 유사(거짓) 복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드러난 진리)로 말미암은 것”이다(갈 1:12).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믿음으로 받았는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살후 2:13). 진리에서 멀어지면 믿음도 무너지고(딤후 2:18), 구원도 흔들린다(딤후 3:8).
그러므로 진리로 자신을 무장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의 바른 교훈 곧 진리를 배우고 나누는 일에 헌신하라. 원수의 유혹과 공격에 손쉽게 쓰러지는 이유가 궁금한가? 단순하다. 틈틈이 진리로 자신을 단단히 묶기는커녕 거짓을 받아들이며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틈만나면 서서 진리의 허리띠로 삶을 단단히 묶어라!
② 의의 호심경: 호심경은 가슴받이(우리말성경), 가슴막이(새번역)으로도 번역된, 특별히 생명과 직결된 심장과 내장 등을 보호하는 병기다. 방패로도 전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호심경은 원수가 찌른 회심의 일격을 막아 치명상을 당하지 않게 하는 강력한 보호 장치였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보호하는 단단한 병기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14절)
여기서 말하는 의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말하는 것인지 우리가 이루는 실천적인 의를 말하는 것인지 논쟁이 있다. 둘 다 의미가 있다. 계시록 12장 10-11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를 참소(고소)하는 자다(계 12:10). 그러나 성도는 “1) 어린 양의 피와 2)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긴다(계 12:11). 여기 두 가지 의의 개념이 다 있다.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고발하고 낙심하게 만들려고 열심히 애써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값없이 얻은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반드시 우리를 지켜낸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4).
동시에 우리의 실천적인 의도 중요하다(“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 그리스도인이 삶으로 증언하는 말씀 곧 말씀에 순종함으로 맺는 의로운 삶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은 사실을 확증하기 때문이다. 의로운 행위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의로운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열매다. 반대로 우리 삶에 의로운 열매가 맺히지 않을 때, 우리가 진짜 칭의를 받았는지 의심에 싸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로 의를 얻어내려는 모든 시도를 경계하면서도, 의로운 삶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한다. 그럴 때, 원수의 고발 앞에 당당할 수 있다. 어린 양의 보혈과 말씀 순종으로 증언된 의로운 삶으로, 영적 전쟁에서 당신을 지켜내라!
③ 복음의 신: 전쟁을 치를 때, 신발이 중요할까? 그렇다. 양탄자나 장판 위에서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 군대는 잘 찢어지지 않는 가죽으로 전투화를 만들고 바닥에는 험하고 거친 지형에도 끄떡없도록 금속을 댔다. 모든 병기로 무장했지만, 맨발로 전쟁에 나간 병사가 있다면 금세 다치고 전투력을 크게 상실할 것이다. 그런데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가 신어야 할 것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이다(15절). 복음이 영적 전쟁을 치르는 우리에게 무엇을 준비시킬까? 무엇을 미리 갖추게 하여 잘 싸우게 할까?
복음을 수식하는 “평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데(요 14:27), 바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관계에서 오는 평화다. 주님은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히 우리 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홀로 영적 전투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원수를 보면서 염려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 당신과 함께 싸우시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2).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노래했다(시 23:4). 우리가 음침한 골짜기에서 목숨을 건 영적 전투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단언하셨다(마 16:18). 우리와 화목한 동맹을 이룬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악한 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④ 믿음의 방패: 방패는 적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는 가장 주요한 방어 수단이다. 로마 군대가 사용한 방패는 전신을 막을 수 있는 대형 방패였는데, 이것으로 원수의 모든 공격을 일차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영적 전쟁에서 방패의 역할도 비슷하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16절)
“모든 것 위에”라는 말은 방패가 모든 병기보다 먼저 원수의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한다는 말은 원수 마귀가 우리에게 쏘는 모든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이 방패가 우리를 “능히”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방패는 바로 믿음이다. 우리는 주관적인 믿음, 곧 강건해지기도 하고 연약해지기도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의 대상은 객관적인 진리를 통해 붙드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하신 구원의 역사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성경은 또한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전쟁 중에서 원수의 수많은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하여 믿음을 길러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복음의 진리에 나타난 의로우신 하나님을 더 분명히 아는 것으로. 그리고 간절히 구해야 한다.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믿음을 주셨고 또 견고히 자라게 하신다(살후 1:3).
⑤ 구원의 투구: 병사가 필히 지켜야 할 곳은 심장 그리고 머리다. 머리를 다치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구를 쓰는데, 영적 전쟁에서 써야 할 투구는 바로 구원의 투구다. 이미 구원받은 이들이 치르는 것이 영적 전쟁이다. 마귀는 자기편에 속한 자를 공격하지 않는다(마 12:26). 그러면 영적 전쟁 중 취해야 할 구원의 투구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생명이 끝까지 보호될 것에 관한 확신, 즉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마침내 이루시고 영적 전쟁을 승리로 끝내실 것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르며 계속해서 참고 견디며 투쟁한다. 우리에게 장차 복이 있다는 것을 소망하고 확신하면서. 우리가 장래 바라는 복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인데, 전쟁 중에 그것은 곧 우리의 투구가 되어 우리가 힘껏 싸울 수 있는 산 소망이 된다. 성경은 우리가 가진 이 산 소망에 관하여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한다(벧전 1:5). 하나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아 예비하신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소망하며 확신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치르는 우리 막강한 전투력이다!
공격용 병기: 하나님의 말씀
⑥ 성령의 검: 유일한 공격용 병기는 검(칼)이다. 병사는 40cm 정도의 검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휴대하고 있었다. 영적 전쟁의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인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영감으로 기록하셨고, 조명하여 그 뜻을 밝히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히 4:12, “좌우에 날 선 검”). 말씀이 대적 마귀를 실제로 어떻게 물리치는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장면이다(마 4장). 마귀의 모든 시험을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로 되받아치셨고, 마귀는 결국 떠나갔다. 여기서 명령어인 “가지라”를 주목하라(17절). 이 단어는 단지 ‘소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영접하다’,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이 치르신 영적 전쟁이 쉬웠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니까 마귀를 가볍게 물리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원하는 것을 거스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약속하신 말씀이 의심스러울 수 있는 환경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전히 받아들이셨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령의 검 사용법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휴대할 수 있도록 말씀을 가까이 대하고 부지런히 익혀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보는 것을 설명하는 진리의 렌즈, 가치를 바르게 측정하는 정확한 저울,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믿게 하는 절대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순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배가 산산조각 나게 만든 풍랑이 치는 바다 위에서 베테랑 선원들도 두려워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라고 말했다. 어떻게?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우리에게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성령의 검을 갖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 말씀은 이렇게 원수를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능력 있는 무기다. 검을 가지고 힘껏 싸우라!
지원용 병기: 기도
⑦ 기도: 마지막으로 지원용 무기가 있다. 전쟁사에서 유명한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은 많은 경우 든든한 지원이었다. 전장에 있는 부대의 전투력이 아무리 좋고 용감하게 싸워도 지원군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언제든지 지원군을 부를 수 있는 병기를 소개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8절).
기도는 우리의 막강한 지원군인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강력한 무기다.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말한다(약 5:16). 또한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셨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벧전 3:12).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는 요구는 기도라는 무기를 최대한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에(롬 8:27) 합하여 기도하라는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지원을 요청하는 유일한 통신선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라는 말은 기도 없이는 영적 전쟁에 패배한다는 경각심을 항상 가지고 밤낮 부르짖으라는 권면이고(눅 18:7), 마지막으로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명령은 전우를 위한 지원요청도 잊지 말라는 중요한 조언이다. 바울은 특별히 자신을 위한 지원요청을 마지막 구절로 부탁했다(19-20절). 기억하라. 기도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의 무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한다.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말씀, 기도. 이것이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취해야 할 하나님 주신 무기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그러므로 하나님의 갑주로 무장하고 하나님이 가져다주실 영적 전쟁의 승리를 기대하자.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