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 시리즈는 2026년 위드바이블 캠프 주제 설교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열심을 되찾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가장 시급할 뿐만 아니라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일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제대로 알고 찬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고, 그것이 열심을 일으키는 막강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느 8:10). 그래서 그 옛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깨우쳤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 33:29)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될 언약의 두 번째 세대는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들이 받은 구원의 복이 얼마나 큰지.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열심을 쏟으셨는지. 그들의 조상처럼 의욕을 잃고 반역하여 멸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새언약 백성 된 우리를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각성시킨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받은 신령한 복이 얼마나 큰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얼마나 열심을 쏟으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꺼진 열심을 불태울 막강한 화력을 일으킬 것이다.
에베소서 1장 3-14절은 찬송시다.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여,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로 마친다.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시고(3절),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신령한 복이다. 하나님은 모든 기업의 복을 약속의 성령으로 보증하셨다(14절). 아버지 하나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모두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일에 협력하셨다. 한 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함께 열심을 내셨고, 그것은 영원히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열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3-4절)
4절의 “곧”은 3절에서 찬송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겠다는 힌트를 주는데, 첫 번째로 감격하며 감사한 제목은 바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열심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3절). 이후로도 찬송시 안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은혜를 여러 번 반복하여 높이는 것을 발견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5절), “예정하신 것”(9절),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11절).
‘택하다’를 뜻하는 각기 다른 세 단어는 하나님께서 ① ἐκλέγομαι: 주권적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과 ② προορίζω: 우리와 아무런 상관 없이 미리 그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③ προτίθημι: 하나님의 택하심엔 분명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각각 강조한다.
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요일 4:10, 19).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 이유가 뭔가? 우리 안에선 도저히 찾을 수 없다. ② 그분의 사랑은 창세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 우리가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 것이다(롬 9:11).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미리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태양이 열렬히 타오르는 것은 알아도 그 이유는 알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그토록 열심히 사랑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사랑이 처음부터 영원히 뜨겁게 타오른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③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의 이유는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 목적은 명확하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시고, 우리를 예정하신 것도 그분의 “계획을 따라” 된 것이다. 무슨 계획인가?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4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5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계획이다(6절). 이를 위하여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는가?(롬 11:29). 이는 하나님의 택하심엔 실수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누구도 도중에 빼앗기지 않는다(요 10:28). 이것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오직 은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예정만 일방적인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는 택하심부터 영화롭게 하심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반드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 것이다. 지극히 크신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실 것이다(신분적으로 또 상태적으로).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높이는 찬송을 부르게 하실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은혜를 입양에 비유하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를 일방적으로 선택한다. 아이의 타고난 악한 습성이나 성향이 있더라도 그것을 품고 진짜 아들딸로서 끝까지 사랑할 것을 각오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의 본성과 반항심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도 사랑과 은혜로 그것을 끌어안고 끝까지 사랑한다. 아이가 온전히 자유롭고 형통한 삶을 누리도록 변함없이 은혜로 자신을 끊임없이 내준다. 하나님의 열심도 그러하다. 우리를 자녀 삼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기로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다.
우리를 속량한 하나님의 열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절)
두 번째로 우리가 찬송해야 할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속량하신 은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 원대한 계획을 노래할 때, 반복된 표현이 있다는 걸 아는가? “그리스도 안에서”(4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절),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6절),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9절), “그 안에서”(11절). 한마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3절). 하나님의 열렬한 사랑이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 관계를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는 관계라고 말씀하셨다(요 6:56; 14:20).
우리는 왜 하나님의 열심이 식었다고 의심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변할까 봐 염려하는가? 우리의 불안한 상태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이 바뀐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창세전부터 영원히 멈추지 않고 불타오르는 아버지 하나님의 성자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근거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는 연합을 이룬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되었는가?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 주님의 살과 피는 곧 그분의 속량, 다른 말로 대속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는 마땅히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절).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의심하지 못하게 분명히 확증하신 것이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롬 5:8).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아들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다. 자식을 내어주는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자기 몸의 일부를 자식에게 이식해 주는 부모가 기능이 떨어지는 늙은 기관을 주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그런 자식을 내어주는 은혜와 사랑은 얼마나 깊고 높을까? 성경은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마땅히 두 가지 사실에 감격하고 감사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둘째,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흠 없이 거룩한 자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크기가 확증되었다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와 연합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창세전부터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묻는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우리를 인치신 하나님의 열심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3-4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연합한 그리스도 안에서 변함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희생적인 사랑의 결과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이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 성령 하나님의 인치신 은혜에 감사할 차례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3-14절).
먼저, 성령을 주신 것의 목적은 결국,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성령이 하신 일에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에 관한 예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삼위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먼저,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들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영감으로 기록하셨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성경은 묻는다(롬 10:14).
또한 성령은 은사를 주셔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통하여 복음을 모든 민족, 모든 세대에 대대로 들려지게 하셨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들음은 성령 하나님의 증언을 직접 들은 것이다(딤후 3:16-7).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감동으로 진리를 조금의 오류도 없이 밝히 알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둘째로, 듣는다고 다 믿는가? 그렇지 않다. 들음을 통해 믿음이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롬 10:17), 듣는다고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결국 믿음 또한 성령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성경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말한다(고전 2:10). 그렇다. 우리가 믿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믿은 것이다. 귀로 들어서만이 아니라 내적인 들음이 있었기 때문에 응답한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생명의 주를 볼 수 있었던 것, 어둠 가운데 참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내어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은혜를 풍성히 베푸셨기 때문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그리고 여기서 은혜는 멈추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약속된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실 때 계획하신 속량 곧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셔서 자기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시는 일 곧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는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멈추지 않을 것을 보증하신다. 우리는 창세전 시작된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 과거 십자가에서 확증된 속량의 은혜, 그리고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신 성령의 은혜에 감사한다. 그런데 그 은혜가 과거에 모두 끝나버린 것처럼 여길 때가 많다. 그 사랑이 변치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그 사랑이 결국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시고 모든 복을 얻기까지 일할 것을 어떻게 믿는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이 열심히 확증하신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의욕을 잃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식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멈추지 않는 열심, 후회가 없으신 사랑과 은혜를 그만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의 증거다. 충분히 알고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9). 우리는 너무 모른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랑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하지도 않고, 그 지식이 말해주는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충만하지 않은 것이다. 늘 갈급하고 목마른 것이다.
당신 안에서 열심을 불태울 자원을 찾지 말라. 금세 고갈되어 사그라들 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당신의 심지를 두라. 그리고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입술과 삶을 통하여 찬송이 흘러넘칠 때까지, 계속해서 찾고 구하고 보고 들으며 기억하고 묵상하라. “찬송하리로다”(3절),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절),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4절).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부으시는 이유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얻고자 열심을 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필요로하지는 않으시지만, 그것을 간절히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실 만큼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셨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열심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열심도 타오른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