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 시리즈는 2026년 위드바이블 캠프 주제 설교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주님은 그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5:5).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욕 잃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 생각을 바꾸고, 감정을 끌어올리며, 의지를 일으켜 세워 다시 열심을 내려고 애쓰지만, 배터리 용량이 1% 남은 핸드폰처럼, 항상 금세 꺼져버리고 만다. 우리는 열심을 되찾기 위하여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하고 찬송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열심을 계속해서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고, 끊임없이 구해야 한다.
에베소서 1장 3-14절이 찬송시였다면, 본문(3장 14-21절)은 기도문이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로 시작된 기도는 “아멘”으로 끝난다. 찬송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대상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기도의 내용으로 찬송시와 마찬가지로 삼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구한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절), “성령으로 말미암아”(16절),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17절).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절)
“이러므로”는 기도의 동기를 밝힌다. 복음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뜨거운 열심을 아는 것은 경이롭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것을 밝히 알게 하셔서 강건한 속사람과 굳건한 믿음, 넘치는 사랑을 채워주실 하나님의 능력이 꼭 필요하다.
내면을 강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대상은 그들을 낳고 새로운 이름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차별 없이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을 자녀로 삼으셨는데, 자녀로 택하신 자들은 그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아버지께 언제든지 나아가 사랑과 공경을 담아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무릎을 꿇고 비노니.”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라고 굳게 약속하셨다(요 16:23).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아신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거나 유혹이나 해로운 것이 될 것을 원할 때, 간절히 구한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던져주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20절) 우리는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이다!
본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100% 확신할 수 있는데, 이는 복음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열심이 반드시 우리 에게 이루실 일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간구는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16절)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속사람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을 얻었다. 그런데 영적 출생(중생)에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영적 성장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전 6:11).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신다(고전 3:6). 바울은 편지 끝에 다시 한번 우리 속사람이 강건하여지는 힘의 원천을 밝혔다: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특별히,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능력을 성령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나는 도대체 언제 강한 속사람을 가질 수 있을까? 죄의 유혹에 능히 맞서고 승리하는 기쁨을 과연 누릴 수 있을까?’ 이렇게 탄식하며 낙심하는가? 우리 속사람의 유약함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능력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분에게 찾아야 한다.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께서 무엇을 간절히 구하시는가? 바로 우리 속사람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강건해지는 것이다(롬 8:28-29).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절한 요청과 능력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실 때, 당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역사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다함이 없고 제한이 없는 하나님 영광이 풍성한 만큼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자라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언제든지 우리에게 공급하신다. 구하기만 하면! 그러므로 절대 자기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그건 원수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한없이 넘치는 하나님의 풍성함 속에서 화려하게 살 수 있는데도 우리 자신의 부족함이라는 누더기를 걸친 채 돌아다닌다”(“에베소서”, 174p).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성령과 함께 아버지의 능력을 항상 구하라.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실 것이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17절)
두 번째로 우리가 구할 것은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고 사랑하며 기뻐하는 자들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우리 영혼이 새롭게 태어났을 때, 그리스도를 보는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다. 어떤 사람은 객관적인 증거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성경의 가르침을 듣고,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의 설득과 요청에 따라 구원받았지만, 영혼을 거듭나게 한 믿음은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이나 다른 어떤 대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다.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께 받은 믿음이라서 그 믿음도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은 계속해서 그 믿음을 더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항상 계신다. 우리 믿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우리 안팎으로 이동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우리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는 렌즈다. 두 번째 기도는 첫 번째 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아버지께 구할 때, 1) 성령께서 우리 속사람을, 그리스도를 닮도록 강건하게 해달라고 아뢰면서, 2)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보게 하시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이 자란다고 말한다(고후 10:15). 믿음이 굳건할 수도 있지만 연약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골 2:5; 롬 14:1-2).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믿음을 강하게 하시는가? 믿음으로 그들 마음에 계신 예수님을 본 성도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이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받았고 그것으로 근심하게 되었으나, 그것을 뛰어넘는 큰 기쁨으로 반응했다. 어째선가? 하나님께서 불로 연단하여 얻는 금보다 더 귀한 믿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단련하여 확실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보장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께서 우리 속사람을 성령으로 강건하게 하시는 과정도 유사하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8-9).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붙들려 있으면서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 속에서는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는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는 소리치신다.” 우리 삶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은 우리 믿음을 연단하여 더 분명하게 우리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 능력과 은혜의 방편이다. 심지어 고통과 근심을 가져다주는 일 가운데서는 더 크게 일하신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도 있지만, 믿음을 강하게 단련하여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보고 더욱 사랑하며 기뻐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라.
사랑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능력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충만한 사랑 가운데 함께 굳게 서게 하시는 능력이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7-9절)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 가운데서 각각의 성도가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도록 능력을 더하신다. 농사와 공사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그리고 단단히 고정되어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이어서,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는데, 그냥 사랑이 아니라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을 통한 것이 아니라 “지식” 곧 객관적인 말씀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란 말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5:10).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그래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권면했다(벧후 3:18).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서 자라는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찬양을 부르고 교제를 나눌 때, 아주 가끔 더 깊은 차원을 짧게 경험하고 감격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알고 있는 수준에 머무르면서도 더 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경험하기만 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헤아리고 측량하면서 더 많이 깨닫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너비, 길이, 높이, 깊이는 측량의 단위다. “어떠함을 깨”닫는 것은 그 측량을 통해 얻는 결과다. 성경은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고 말한다(골 1:19).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더 많이 깨달아 알게 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매년 새해가 되면 성경 일독, 읽기, 공부, 신앙 서적 읽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결실이 적을 때가 많다. 그래서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되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만 넘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맛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린 교만해지고 하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채워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구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은혜로운 방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많이 측량하여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한다.
29년의 짧지만, 충만한 삶을 살았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18세기 인디언 선교를 하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다. 그의 일기장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세상에 나왔는데, 그는 매일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고, 어떤 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력하게 경험하고, 또 어떤 날은 냉담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지만, 날마다 멈추지 않고 간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삶은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채워진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가 간절히 얻기 원하는 풍성한 삶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진실로 기뻐하시는 삶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구하라!
찬송시와 기도문은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 바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1절)
존 파이퍼가 그의 모든 책에서 강조하는 기독교 희락주의 대표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더욱 또렷이 보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많이 깨달아 사랑 가운데 함께 충만하게 하신다.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하고 기뻐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이 상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의 기쁨을 제한하고, 심지어 슬픔을 허락하신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항상 최고를 주신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 곧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라. 그것이 우리가 가장 좋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는 길이고 동시에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