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이다. 교회 사역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번아웃의 사전적 의미가 말하는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를 겪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번아웃을 잘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결국 번아웃 증후군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선물인 은사로 성도를 섬기는 일이 전혀 기쁨이 안 되고 무거운 짐만 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 원하지 않으신다. 교회 사역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이 헌신하는 예배와 아름다운 섬김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의 심신이 지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 사역에 힘쓰면서, 당신의 마음이 분주해지거나 다른 이를 향하여 불평이 흘러나올 때, 단순히 지친 것이 아니라 지친 마음에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쌓인 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택하는 자책과 회피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당신을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지체로 사용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우리는 어떻게 번아웃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친 상태에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을까?
3.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올바른 해결책
많은 일로 염려와 근심에 빠진 마르다가 동생과 함께 예수님에 관한 불평을 터뜨렸을 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1-2a절)
① 인정: 먼저,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두 번 부르시면서, 긴급하고 진중하게 그녀의 지치고 상심한 마음을 공감하시고 위로하셨다.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한두 사람이 알아주는 것으로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 교회 학교 교사로 십수 년을 섬기면서 처음 뜨거웠던 열정이 점점 식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성도나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지금까지 많이 수고한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영적으로 너무 큰 복을 얻었어요. 수고한 모든 것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라고 진심으로 말해준다면, 아마도 큰 격려를 받고 새로운 힘으로 더욱 기쁘게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기력할 때, 주님께서 모두 아신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주님은 모두 아신다. 주님은 수고한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칭찬하셨다(계 2:2-3).
예수님이 감당하신 공적인 사역은 누구라도 번아웃 증후군이 올만하다. 살인적인 일정 그리고 쏟아지는 비방과 조롱, 지겹도록 좇아다니는 방해꾼과 귀신의 세력들. 그나마 적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을 칭송하고 믿음으로 그분의 사역을 인정해 주었는데, 중요한 건 예수님이 그것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 2:24). 사람의 인정을 기대하고 의존하기 시작하면, 결국 실망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칭찬했다가 비방으로 돌아설 수도 있고,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사역의 동기를 삼는 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사람에게 인정을 바라지 않으셨다. 다만, 아버지의 인정을 구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요 12:28)
주님의 인정을 구하라. 당신이 맡은 교회 사역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구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내가 이미 너를 통하여 영광을 얻고 있고, 계속해서 영광을 얻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인정은 최종적이고 영구적이다.
② 진단: 주님은 이어서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한 이유를 정확히 진단하셨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1b절). 주님은 그녀가 심신이 지쳐버린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녀가 번아웃을 겪는 것은 동생 마리아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내버려둔 예수님의 무심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는 “많은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게 된 것이었다. 외부 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마르다 마음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자책과 회피가 교회 사역으로 지친 우리가 자가 진단에 실패한 결과라면, 주님은 올바른 진단을 내리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자기 자신을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탓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일차적으로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분명히 말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정욕”은 매우 강한 원함, 바람, 의지를 말한다. 마르다는 주님께 제대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시간 안에 혹은 생각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근심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자기 정욕을 따라 분노하게 되었다. 말씀을 전하고 계신 예수님께 잘못이 있던 게 아니었다. 그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의 잘못도 아니었다. 문제는 마르다의 마음속에서 발생했고, 그러니까 그 문제의 올바른 진단도 마음 속에서 일어난 것을 다루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당신의 마음이 왜 무기력하고 우울한지 깊이 생각해 보라. 분명히 당신이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는 선하고 아름다운 바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갈망이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적 전쟁에서 잠시 승리하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그 욕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욕심을 정복해야 한다. 당신의 원수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마음을 차지한 원수를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번아웃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③ 처방: 주님은 마르다에게 실질적인 조언도 하셨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a절).
‘그런 삐딱한 마음으로 대접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라고 호통치신 것이 아니다. ‘됐으니까,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서 먹자’라고 비꼬면서 냉소를 보이신 것도 아니다. 마르다의 분주한 마음을 해결하시려는 주님의 실질적인 처방이었다. 우리는 마르다처럼 교회 사역으로 주님과 성도를 섬기면서 자기 기준을 만들 때가 많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많은 것을 준비해 오라고 요청하신 것이 아니다. 마르다가 주님을 위하여 많은 것을 준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다가 한 가지만 준비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실망하실 일도 아니었다. 마르다의 마음에 차지 않았을 뿐.
교회 사역에 깊이 헌신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기준을 만들기가 쉽다. 교회 학교, 예배 찬양팀, 특정 부서 등 여러 사역을 모두 잘 해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중 몇 개를 놓는 것은 불성실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오해한다. 때론 각각의 사역을 책임지고 돌보는 리더가 노골적으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유초등부를 내려놓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까?’ 이런 식으로. 하지만, 주님은 많은 일을 하기때문에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라. 몇 가지만 해도 좋고, 한 가지만이라도 충분하다.
성경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벧전 4:11). 교회 사역은 일종의 “봉사”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같이 하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을 감당하면서 우리는 종종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 “같이 하”기 때문이다. 사역의 성과를 내가 주님을 위하여 이룬 업적으로 여기고, 반대로 사역의 성과가 잘 나지 않을 때 혹은 누가 그 성과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의 실패로 보고(혹은 남들이 그렇게 볼까봐 염려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직 ‘충성’만을 요구하신다. 그것을 잊지 말자. 많은 일이든 적은 일이든. 주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 안에서, 때론 주님께서 허락하신 상황과 환경에 제약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에 충성하면 된다. 그러면 주님은 “그것으로 족하니라”라고 흡족하게 말씀하실 것이다.
④ 우선: 주님은 마르다가 비판한 마리아에 관하여도 이렇게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b절). 교회 사역에 헌신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헌신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으로 서운하게 들린다. ‘그러면 우리도 좋은 편을 택할 걸 그랬네요, 그럼 누가 실질적인 준비를 할까요?’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가 선택한 봉사를 평가절하하신 것도 아니고, 마리아에게 마르다를 돕지 말라고 금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다만 이 상황에서 마르다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봉사와 주님께 받는 말씀 중 무엇이 더 우선순위에 있을까? 당연히 주님께 받는 말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사역은 결국 우리가 주께 받아서 돌려드리는 봉사라서, 공급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께서 우리 수고를 알아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엉뚱한 외부 환경이나 사람에게서 찾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주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아니라 몇 가지 혹은 한 가지라도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말씀이 우선이다. 말씀이 우리를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 사역에 전심전력하느라 더 “좋은 편”을 “빼앗기”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에서 멀어지면서, 당신의 열정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할 것이다.
“번아웃 없는 사역의 비결”이란 제목이 다소 과장된 것을 인정한다. 교회 사역에 헌신하면서 우리는 수시로 지치고, 의무적으로 할 때도 분명 있으며,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하지만, 교회 사역에 헌신했던 모든 세월을 돌아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어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여 주신 것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큰 특권이기 때문이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충성스럽지 못할 때도 많은 나를 날마다 새롭게 회복하시고 다시 이 놀라운 섬김의 부르심으로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드리기를 원한다. 교회 사역의 최종 목적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당신의 봉사가 노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되기를 간구한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힘이 바로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번아웃을 사라지게 하는 비결이다(느 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