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씀하신 대로
본문 : 창세기 21장 1~7절
설교자 : 이병권
저는 오늘 “말씀하신 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 이삭이 태어나는 내용입니다. 오랜 기다림 후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드디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이삭을 낳을 거라고, 이미 두 번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17:17-21; 18:10-15). 그 예언의 말씀이 지금 성취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후에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두 개의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사건과 아비멜렉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저자는 이삭에 대한 예언과 이어지는 두 개의 사건을 길게 다루고 있는 반면에 대조적으로 이삭의 출생은 별것 아닌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마치, 이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이냐는 듯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야단 피울 일은 아닙니다. 정말 너무도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1-2) 특별히 1절과 2절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말씀하신 대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는 말씀이 3번이나 반복되면서 이삭의 출생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삭의 출생, 그 자체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일, 이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사라를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말로 ‘돌보다’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방문하다, 찾아오다’라는 뜻입니다. 직역을 하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찾아오셨다’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방문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년 이맘때”가 되어 사라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삭이 태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때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2절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노년의 아브라함” 지금 아브라함은 100세의 나이고, 그의 아내 사라는 90세의 나이입니다. 사라는 이미 생리가 끊겨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사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녀를 돌보셨습니다. 나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시간, 어떠한 가능성도 없는 시간,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시간까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약속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사라가 스스로 포기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그 시간을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90세가 다 된 할머니, 사라가 임신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습니다. 이삭의 출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8:14)
하나님께 능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기다림 속에 들어가면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깜박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휘둘리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그 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어떤 순간에도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특별히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답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더디게 일하시고 자꾸 미루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못마땅해 하고, 초조해하며, 때때로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왜 잘못된 걸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서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조바심을 내며 앞서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따라 완벽한 계획대로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에 대해서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은 기다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정하신 때가 되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으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감추신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늦지 않으십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하신 시간에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기다림이 있더라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머지않아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이 사라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어지는 3에서 5절까지의 말씀은 약속의 아들을 얻은 후 아브라함의 반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3-5) 아브라함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브라함은 자그마치 100세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아브라함의 반응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관심이 아브라함의 감정보다는 행동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17:19)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보다 더 어려운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할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난 지 팔일 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병원이 있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마취약도 없는데 괜찮을까요? 잘못하다 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죠? 갓 태어난 아들에게 직접 할례를 행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순종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어야 합니다. 순종은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물론, 약속이 성취된 후에도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마땅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실 테니 우리가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몫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원리인데 이것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면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워지고 힘든 것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때로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내 뜻대로 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그냥 무시하고 싶은 유혹에도 빠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직하게 순종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후에도 동일합니다.
신앙의 위기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때 오기도 하지만 기도가 응답되고 어려움이 지나갔을 때 오기도 합니다. 뭔가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이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간절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됐구나 싶어서 마음이 풀어지고, 순종하기를 미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방심하지 말고,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명령하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6~7절은 아브라함의 반응에 이어 사라의 반응이 나옵니다. 사라의 충만한 기쁨이 잘 표현됩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6-7)
사라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라가 기뻐하며 웃고 있습니다. 이 웃음은 1년 전에 이삭이 태어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사라가 보였던 웃음과는 다른 웃음입니다. 그때 사라는 하나님 말씀에 비웃음으로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기뻐서 웃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웃음은 사라만의 웃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삭의 출생은 그의 부모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 약속의 자녀입니다. 사라가 경험하는 웃음과 기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시므온과 84세의 늙은 여선지자 안나가 나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대다수의 백성들은 로마의 통치하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종교지도자는 백성들에게 짐을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약속을 잊어가고 있었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영광’,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말씀을 신뢰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그들은 그 기다림의 결실로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직접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시므온의 고백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9-30)
시므온도 ‘말씀하신 대로’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그분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하신 대로 이미 우리에게 행하셨고, 또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도 행하실 것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참된 기쁨을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온전하게 누릴 기쁨을 소망하며,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함으로 기다리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완벽한 시간에 웃음을 주실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에 따라, 약속에 동참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기다림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약속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에 대해서 믿음과 순종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기다림은 우연히 늦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어떠한 기다림도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가 기다림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삭입니다. 그 약속을 하나님이 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쁘셔서 우리를 생각할 틈이 없다고, 우리를 속이려고 합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넘어가지 마십시오. 비록, 기다림이 우리에게는 그리 즐거운 시간은 아니지만, 기다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기다림에 대해서 하나님은 최선의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를 때 내가 원하는 나의 시간표를 뒤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더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과 다르다고 겁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기다림은 나태함을 낳게 되지만, 기도 있는 기다림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를 구하며,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기다림의 과정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얻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벗어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약속에 대한 기다림은 우리의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영성이 잘 훈련되고 성숙해간다면, 우리의 삶은 주님 안에서 더 아름답게 가꾸어 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러한 믿음으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산다면, 참 기쁨과 만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약속을 이루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