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늘 멜로디 연주법

본문: 로마서 12장 9-13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그렇지 않은 모습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인격과 태도, 나의 전인격적인 모든 것들이 더 주님을 닮아가고 내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화의 과정 중에 있고 성화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이루어야 할 변화된 모습, 성화되는 것을 하늘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는 우리가 삶으로 연주하는 멜로디입니다. 이 땅에 속하거나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멜로디가 아니라 하늘의 가치와 하늘의 방법과 하늘의 능력을 나타내는 하늘 멜로디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하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멜로디를 연주함으로써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늘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늘 멜로디를 이 땅 가운데 울려 퍼지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늘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다섯 가지 방법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가 이 연주법을 따른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된 모습을 세상 가운데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 멜로디, 첫 번째는 ‘사랑하기’입니다.
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오늘 본문은 기록되는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우리 성경으로 볼 때도 전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원문에는 더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예로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거짓 없는 사랑’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동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9절부터 달라진 기록 방법에 대해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금언과도 같은 여러 교훈들은 전한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바울이 잠언과 같이 권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나오는 ‘거짓 없는 사랑’은 단락의 표제와도 같습니다.

말씀에서 ‘거짓 없는’ 이라는 말은 ‘가식이 없는’, ‘위선이 없는’을 뜻합니다. 무대에서 배우가 연극을 할 때 쓰는 가면을 가리키는 말인데 위선의 가면을 벗은 ‘진정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다릅니다. 가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없는 진짜 사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겁니다. 이 두 가지는 그 의미가 아주 강합니다. 먼저, 미워한다는 것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혐오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그렇게 소름끼치도록 미워하는 것이 악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서 벗어난 악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속하라”는 것은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빈틈없이 결합되어서 하나처럼 되는 것, 그래서 부부의 특징인 친밀한 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강력한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아주 튼튼한 줄로 분리되지 않도록 하나로 묶어버린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 선에 꼭 붙어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이 없는 사랑, 진정한 사랑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찐사랑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고 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만족을 주기 위해 수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만족, 그 원함이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고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악이라면, 진짜 사랑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맹목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가장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사람에게 해로운 것을 주지 않는 것, 악을 미워하는 것이 바르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사랑이 그러합니다. 사랑은 바른 기준으로 바르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가 악을 원할 때 들어주지 않습니다. 미혼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함으로 선을 붙잡아야 합니다. 결혼 후에 얻을 수 있는 만족을 결혼 전에 얻으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를 위해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그래서 함께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러해야 합니다. 교회는 함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누군가가 악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선한 일을 피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안에서 잘 되게 하는 것,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연주하는 하늘 멜로디 ‘사랑하기’입니다.

하늘 멜로디, 두 번째는 ‘존경하기’입니다.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교회는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말씀에서 우애라는 말하는 것은 한 가족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교회가 실천하는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교회로 부르셔서 한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대할 때는 뭔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귀하게 보고 가치 있게 여기고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그 존재 자체로 매길 수 없는 가치와 존엄성을 가집니다. 더욱이 교회로서 우리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구속된 자들입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지체로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존경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고 자세히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한 가족이기에 그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존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존경하기를 누가 먼저 해야 합니까?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하는 건가요? 늦게 구원받은 사람이 먼저 해야 합니까? 내가 먼저 합니다. 누가 나를 존경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존경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체가 내가 먼저라는 같은 생각으로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존경하기를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교회의 모습이 어떠할지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하늘 멜로디가 정말 아름답게 연주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멜로디로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대하는 것이 아름다운 연주의 비결입니다.

하늘 멜로디, 세 번째는 ‘열심품기’입니다.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에 대해서 주인이 뭐라고 책망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25:26) 라고 책망하십니다.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것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낭비하며 게으르게 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열심을 품다”는 말은 열정적인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마치 물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열심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열심을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것을 잘못다루면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열심은 광신이라고 평가됩니다. 열심은 언제나 바른 지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모두에게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지만 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기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롬10:2).

바른 지식의 인도함을 받는 열심은 정말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른 지식으로 열심의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하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열심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그러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심으로 나의 원함이나 나의 목적이나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섬기는데 열심을 품고 열심을 사용합니다. 내가 가진 힘과 시간, 나의 물질,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하는 올바른 방향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래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님의 자리에 내가 앉는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고린도 교회에 여러 은사가 있었고 열심도 있었지만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과시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은 겸손히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심이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하늘 멜로디가 되는 것입니다.

‘열심품기’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십니까? 많은 분들이 열심을 품었던 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입니다. 나도 한 때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겼다고, 지금은 현실에 쫓기고 이런 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많이 식어버린 열정으로 살고 있지만 옛날에는 아니었다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떤 경우는 열심을 품고 수고하다가 뜻밖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내가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나를 힘 빠지게 만드는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냥 적당히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는 열정적으로 시작했다가 그냥 오래 가지 않는 것입니다. 매년 1월에 새롭게 시작하는 성경읽기와 비슷한 겁니다. 열정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좋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열정을 계속 불태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계속해서 열심으로 하늘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게 할까요? 이어지는 연주법이 답이 됩니다.

하늘 멜로디, 네 번째는 ‘소망하기’입니다.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소망은 계속해서 주를 섬기게 하고 열정으로 임무를 완수하게 합니다. 소망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소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구성된 세 가지가 그러한 일을 합니다. 소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소망 3세트입니다. 소망, 인내, 기도입니다.

소망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현실을 뛰어넘는 기쁨이기에 환난을 인내하게 합니다.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을 이루는 인내는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우리에게는 환난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우리 힘의 근원이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한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합니다. 아무데도 다닐 수 없고 방에만 있어야 하는데, 그 방에 창이 하나도 없다면 어떨까요? 작은 창 하나도 없는 방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 방에 잠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달, 일 년, 십 년 그렇게 계속 창이 없는 방에서만 지낸다면 어떨까요?

한 연구에 의하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감정을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생활 리듬, 호르몬, 체온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우울증, 불면증, 무력증, 반사작용의 둔화와 같은 정신적, 육체적인 어려움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있어서 창과 같습니다. 지금 나는 방 안에 있지만 소망은 그 너머에 있는 바깥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게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게 합니다. 소망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머지않아 내가 바깥으로 나가서 진짜 세상을 경험하게 될 그날을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우리가 우리의 진짜 인생, 그 영원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창 없는 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창으로 들어오는 하늘의 빛을 본 자이기에 빛 가운데 행하며 그 빛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소망이 우리가 연주하는 하늘 멜로디를 더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 멜로디, 다섯 번째는 ‘공급하기’입니다.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마지막 연주법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성도의 쓸 것, 그 필요를 직접 공급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음식, 옷, 거처 등 물질적인 것을 채워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누는 일입니다. 여기 공급하다는 단어는 ‘교제하다’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코이노니아’의 동사형입니다. 성도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교제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나눕니다.

이러한 교제의 대상은 단지 우리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그네’에게 까지 이어집니다. 교회의 지체를 넘어서 나그네의 필요도 공급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모르는 사람 아무나 데려와서 필요를 채우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여행 중인 여러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많았고 그에 따른 숙박시설은 아주 드물었기에 교회가 손님들에게 거처와 음식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그네를 대접할 것을 명령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할 때 힘쓰라는 말은 ‘추구하라’는 명령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소극적으로 누군가 집을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그네를 대접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과 문화를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는 교회 안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실제적으로 공급하는 일에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실제적인 교제, 공급하는 일에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되는 살아있는 하늘 멜로디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여러 명령들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사랑하기, 존경하기, 열심품기, 소망하기, 공급하기, 우리는 이 모든 일을 기꺼이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본문의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마음에 담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이 내 삶에 역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으로 마땅히 연주해야 할 하늘 멜로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멜로디를 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멜로디를 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하늘 멜로디를 들을 수도 있고 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멜로디를 내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또는 하나님께 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연주를 해야 하겠습니까? 다섯 가지를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표제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 그 하나는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짜 사랑으로 연기하지 마시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잡는 진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부어 주신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