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PART II
본문 : 베드로전서 1:1-2
설교자 : 조정의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전서를 보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인간 시몬 바요나는 나약했고 주님을 배반할 정도로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주님은 그에게 장차 ‘게바’(반석)라 하리라 약속하셨고, 그를 택하시고 동행하시며 교회의 반석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2절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 편지를 받았던 소아시아 성도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또한 1절에서는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을 부르신 분께서 ‘이 땅은 내 왕국이 아니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임과 동시에 이 땅에서는 흩어진 나그네, 외국인과 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1:6). 소아시아 성도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여러 시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된 직장일, 가정일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두 가지 정체성에서 오는 어려움, 즉 하늘에 속한 백성인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당하는 어려움을 가리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야 하는데 이 땅에서 부딪치는 욕망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부딪치며 겪게 되는 시험들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2절). 이런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은혜와 평강이 넘칠 수 있을까요? 많은 어려움 중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줄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 안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택하셨는가, 를 알게 될 때 여러분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크고 진정한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1,2절에서 “택하신 자들”에 대해 길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그들이 어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인지 말하고, 그것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택하셨는지, 하나님 안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 특권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절의 고백(“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처럼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 먼저 이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본도와 갑바도기아 지역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성령의 능력으로 방언을 하고 많은 이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을 때(행2:9) 그곳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돌아간 지역입니다. 갈라디아는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사역지였고 소아시아는 그의 3차 전도여행의 사역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지역에 두란노 서원을 짓고 2년을 그곳에서 강론할 때 아시아 지역에 있는 유대인, 헬라인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19:10). 그리고 비두니아 지역은 전통에 따르면 베드로, 안드레를 통해 복음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소아시아 지역을 돌아보고 로마에 돌아가서 쓴 편지가 이 베드로전서라고 할 때 이 지역에 흩어진 성도들은 다 베드로의 목회 아래 돌봄을 받은 성도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택하심을 받았는지 알고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2절).

“하나님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라고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시는 일에 역사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 보통 천사들을 통해 일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도시를 불사를 때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 할 때도 천사들을 통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를 구원하시는 일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아들 그리스도께서 모두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8:4).

“하나님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여기서 ‘미리 알았다’는 것은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정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것입니다(롬9:11, 살전 1:4, 살후 2:13).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계획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셨기 때문에 영적으로 출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영적인 좋은 친구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접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믿는 자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여러분이 이것을 원해서, 얻기 위해 노력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9:16,18). 이 구원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놀라운 특권을 받은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좋은 부모를 만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때문입니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거룩하게 했다’는 것은 ‘구별하였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주어…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행15:8,9).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구원하신 후에,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혼자 힘들게 살아가게 두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성령이 성도와 영원토록 하는 일은 로마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6-27). 영원토록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모든 것을 통해 합력하여 최고의 선(성화)을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기로 택하신 자들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한 가지 믿는 것은 주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1:7)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금광석이 제련되어서 황금이 되는 것처럼 더 거룩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여러 시험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님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주시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피뿌림은 구약시대의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출24에서 모세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으로 백성들에게 피를 뿌립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언약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새언약의 관계에 들어간 증거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11:25).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10:13,14). 가축을 죽여 피를 뿌리는 것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축의 피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피는 우리가 새언약의 관계에 있다는 확실한 보증이고, 과거 죄에 종노릇 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이제는 죄에 종노릇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 주님이 죽으셨고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죄의 종노릇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그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게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날마다 거룩하게 사는 힘과 이유가 되시는 분입니다.

삼위일체 세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의 삶만 생각하고 산다면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신 백성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이 사는 것,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떤 자들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택하셨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날마다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토록 동행하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새삶을 살 수 있는 힘과 이유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런 택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특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면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