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본문 : 누가복음 8장 26~39절
설교자 : 조정의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마이클 리브스의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란 책의 글 중에 좋은 내용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오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생명과 의로움과 거룩과 구속은 예수 안에서 발견되고,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만이-오직 그들만이!-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이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배워서 조금 안 후 가서 그분처럼 되려고 애쓴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분을 닮아간다. 그분을 주목함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써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해 간다(고후 3:18). 그분의 영광은 참으로 강력하다. 그래서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그분을 직접 보고 그분과 같이 될 것이다.’ 저는 설교자로서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보다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똑같이 피곤하고 주리시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공분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에게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의 가르침이 있으셨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대해 고백하기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온 세상에 덮인 눈을 우리 힘으로 치우기는 불가능하지만 태양빛이 온 세상에 덮인 눈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것은 방법론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능력)으로, 돌밭 같은 내 마음을 계속해서 갈아엎고 고르게 만드시는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했던 제자들이었지만 주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분의 능력이 그들의 무지를 걷어내고 연약한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으시는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는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광풍과 파도를 잠잠케 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관자, 하나님이심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다른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저는 일어난 사건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수많은 귀신들을 내어 쫓는 권능을 행하셨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 가지셨던 권능,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시길 바라고, 그 예수님에게 올바른 반응을 보이게 되시길 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호수 저편(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가다라-마 8)에 이르렀습니다. 데가볼리의 주요 도시로 대부분 헬라인이 거주했던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본문에서의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제자들과 많은 수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과 파도에 단단히 시달린 후였고, 거라사인들은 귀신들린 자에게 단단히 시달린 상태였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일어난 일로 예수님도 역시 광풍에 시달리신 직후였습니다.

‘귀신 들린 자 하나(귀신 들린 자 둘-마태8, 막 5)’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왔습니다.(마 8) 귀신들린자는 귀신들(27절)이, 그것도 많은 귀신(30절)이 들린 상태였고, 그 귀신의 이름은 ‘레기온’이었습니다. 레기온은 로마 군대 단위로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군부대를 가리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6,000명에 육박하는 군대라고 합니다. 바다에 빠진 돼지가 약 이천 마리(마8)라는 것으로 보아도 귀신들의 숫자가 수천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신도 하나의 인격체로 지성, 정서, 의지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서 ‘귀신도 하나님이 한분인 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귀신들은 진리를 거스르는 자로 의지를 가진 인격체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옛 자아와 새 자아가 싸우고 있는 고통을 느낍니다. 한 자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다른 자아는 나의 육신을 위해 살고 싶어 합니다. 소형버스에 각기 다른 인격을 가진 아이들 10명, 100명, 1000명을 태우고 부산에 간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각각 원하는 게 다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데 한 사람 속에 6000명에 육박하는 악한 영들이 들어가 이 사람을 오랜 세월 동안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 누가 수천의 악한 영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는 이 귀신들로부터 이러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길 원하는 옷조차 입지 않고 벌거벗은 상태로 오랜 세월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귀신들은 그 사람이 최소한의 인격적 품위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집에 거하지도 못하고 무덤 사이에 거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유대인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한 일이었습니다. 귀신은 이 사람이 죽음과 멸망에 이르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밤낮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막5)’ 이 사람은 밤낮으로 자신의 몸을 가학적으로 자해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쇠사슬과 고랑에 매여 있었지만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붙잡힌바 되어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습니다.(29절) 그는 거라사인들도 제어할 수 없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너무 사나워 그 길로는 사람들이 다니지 못했습니다.(마8)

얼마나 오랜 세월인지 알 수 없으나 단 하루라도 이렇게 산다는 것은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일입니다. 수천가지 인격이 내 안에서 나를 파괴와 멸망으로 이끌어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루라도 살 수 있겠습니까? 아주 기본적인 선의 조건도 만족시킬 수 없게 만드는, 그 어떤 쇠사슬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악한 영의 힘에 이끌리는 삶이었습니다. 살아도 산것 같지 않은, 차라리 죽음이 더 희망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 개인의 인생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인생도 파괴시키는 인생. 그것은 이미 ‘죽은 인생’이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으며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28절)’ 저는 이 고백이 참 흥미롭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는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람과 파도는 즉각적으로 순종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피조물들이 입이 없어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여기 귀신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수천 명의 귀신들로도 이길 수 없는 권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분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천지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며 그 권능과 주권을 거스를 수 없는 분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감히 대적할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그 발 앞에 엎드렸고, 그분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굴복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예수님이 이미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 귀신에 대해서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쌍한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악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일을 당장 멈추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고, 그들은 주님이 명하신 것을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명령을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귀신들은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무저갱’은 지옥, 영원한 불못에 던지우기 전에 한시적으로 귀신들을 감금하는 곳으로 고통과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귀신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가 이르면’ 자신들이 모두 지옥에 가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귀신들은 자기 눈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수천의 귀신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지옥에 보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자신들을 무저갱에 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간구한 후에 ‘많은’ 돼지떼(이천마리)가 산에서 먹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은 이방인들 지역이라 돼지를 치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구했고 예수님은 이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이 수천의 돼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을 아셨지만, 그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 두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마 10:31)’ 주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고 모든 만물을 귀히 여기시지만 주님은 귀신들린 자의 영혼을 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갔고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했습니다. 왜 돼지들이 몰사했다는 것까지 기록되었을까요? 첫째로 귀신이 사람에게서 돼지로 옮겨졌다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둘째로 수천 귀신의 파괴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은 공포스럽고 죽음의 소리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귀신은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기를 원하고 예수님의 일에 타격을 주고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수천 귀신들을 말 한 마디로 물리치셨고 귀신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굴복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여러분 눈앞에 펼쳐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본문에서 두 가지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거라사인 땅 근방 모든 백성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돼지 치던 자들의 증언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가 예수님과 ‘귀신들렸던 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렸던 자의 변화를 보십시오. 첫째로 오랜 세월 벌거벗고 다니며 무감각했던 자가 옷을 입어 부끄러움을 가렸습니다. 둘째로 수천 가지 악한 인격을 지녔던 자가 온전한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셋째로 그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서 떠나 산 사람들이 거하는 곳,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그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온갖 문제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죽은 자로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리시고 진리로 악을 꾸짖으셨을 때, 그는 완벽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비췄을 때, 그를 뒤덮고 있던 악한 권세가 모두 녹아 내렸고 그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습니다.

돼지 떼의 괴상한 죽음을 보려고 온 자들은 이 귀신들린 자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목격한 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거라사인땅 근방 모든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하였고, 충격적이게도 그분을 내쫓았습니다. 똑같은 광경을 보고 들었어도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파괴력입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도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분을 거절할 정도로 강경하고 굳어진 딱딱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마치 귀신 들렸던 자처럼 죄의 노예 가운데 사는 우리도 동일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조종으로 내가 원하는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옷을 다 입고 있고 말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우리 영혼은 이 귀신들린 자처럼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우리 마음은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속에서 온갖 더럽고 추악한 것을 창조해내며, 수천수만 가지 갈래로 뻗어나는 악한 생각들이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세치 혀에서 나오는 온갖 더러운 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내 남편, 아내, 자녀, 이웃을 얼마나 파멸로 이끌어가고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까? 이것이 죄의 파괴력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죽음과 멸망까지 이끌어갑니다. 누가 우리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이와 대조적으로 귀신들린 자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맛보았고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올라 돌아가실 때, 그분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자들은 그 영광에 가까이 하기를 원하고 그분과 함께 하기를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를 보내셨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이 사람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자는 그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 모든 신성과 아름다운 성품을 온전히 갖추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분리된 지식(앎)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길은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도덕적인 성인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생명이 건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과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만이 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신 분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권능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이 분이 정말 누구신지를 제대로 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예수님과 동행하고 계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고마운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여러분과 동행하시면서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능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영광을 얼마만큼 아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봤을 때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수천의 귀신도 그 앞에서 벌벌 떠는 분이라면, 무서운 광풍과 높은 파도도 순식간에 잠재우시는 분이라면, 고칠 수 없는 질병에서 놓임을 주시고 사회적인 따돌림 가운데 구출하시는 분이라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또 누가 우리를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우리를 수천의 짐승보다 귀히 여기시는데, 그가 우리를 어찌나 귀히 여기셨는지 자기 몸을 죽기까지 내어주심으로 적극적으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선포하셨는데, 그 사랑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누가 이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거절하겠습니까? 이 영광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영광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거스틴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기까지 우리 영혼은 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 영광으로 풍성하게 채워지길 원합니다.

예배시간에 제가 읽었던 시편 27편의 구절들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1)’

그 분의 아름다운 영광과 권능, 신성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그 무엇을 두려워하고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 영광이면 충분합니다.

구역모임을 위한 질문들

1. 귀신들린 자는 어떤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의 삶을 묘사해보십시오.

2. 귀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했습니까?

3.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은 무엇입니까?

4. 당신은 예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시 원하십니까?

5.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 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