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유 있는 삶

본문: 로마서 1장 8~15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는 어떤 경우를 이유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아야지 이유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게 될까요? 정말 열심히 살 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이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유 있는 삶을 생각하기 위해서 오히려 반대로 질문해봅니다.

 

이유 없는 삶이 있을까요? 살면서 이유를 잘 모를 수 있고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유 없는 삶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스스로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하심과 그 계획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 이유를 알고 이유 있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이유를 모르거나 오해하거나 혹은 이유를 무시하고 사느냐하는 차이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삶의 이유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삶의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여유 있는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이유 있는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유를 찾는 것만큼 이유는 찾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삶에는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몇몇 이유들을 살펴보면서 그의 삶에 있었던 이유를 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유를 말하는 접속사로 단락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9절과 11절 앞에 접속사가 있는데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접속사의 구분을 통해서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바울이 말하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유를 살펴보면서 그에게 있었던 이유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살펴볼 첫 번째 이유는 감사의 이유입니다. 바울은 당시 편지의 형식대로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인사말로 편지를 시작한 후에 오늘 본문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편지를 읽은 로마 성도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먼저”라고 말하는데, 무엇보다 먼저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들을 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이유는 “믿음”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은 바울의 감사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도 아니고 실제로 방문 한 적도 없는 로마이지만 그곳에 복음의 씨앗이 뿌리를 내렸고 자라서 그들의 믿음이 이곳저것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물론, 바울의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말이기 보다는 과장법이 사용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제국의 중심이었던 로마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영향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로 인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사의 이유가 믿음이라는 것은 감사의 대상과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감사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두 번째 이유는 기도의 이유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기도 가운데 쉬지 않고 로마의 성도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바울이 하는 말은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면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위해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증인이 되십니다.’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성도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과 열정이 쉬지 않는 기도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그가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기도제목이 되었던 것 그의 기도의 이유는 “만남”입니다. 그들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합니다. 만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그렇게 간절함으로 그들과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 성도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아직까지도 이방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오지 않은 것을 보면, 로마에 대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하지만 그동안 바울이 로마에 가지 못했던 것은 그의 의지나 열의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고자 했지만 지금까지 그 길이 막혔습니다(13). 하나님이 그 섭리 가운데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성도들을 위해 그런 성도들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만남이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길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다시 예전처럼 만날 수 있도록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우리의 바람과 현실이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 기도가 이루어지길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그 길이 막힌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로마에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세 번째 이유는 방문의 이유입니다. 바울은 왜 그들을 만나려고 할까요? 왜 로마에 방문하려고 했던 걸까요? 방문의 이유는 다시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방문의 이유, 첫째는 “은사”입니다.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이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로마에 방문하려는 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은 은사를 통해 그들을 견고하게 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 말씀하는 “어떤 신령한 은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은사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은사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재능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여기 본문을 생각하면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바울이 은사를 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하는 은사는 영적인 재능이 아니라 이어지는 말씀에서 생각해볼 때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어떤 통찰력이나 복음에 대한 지식과 이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방문해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나눔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다음의 말을 덧붙입니다.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자이기에 그들 위에서 수준 낮은 그들의 믿음을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는 것은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일입니다. ‘내가 엄청 바쁜 사람인데, 그래도 특별히 시간을 내서 너희를 만나 너희의 믿음을 좀 더 성장시켜줄게‘ 이런 입장이 아닙니다. ‘너희를 만나 우리가 주님 안에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겸손하면서도 또 조심스럽게 방문의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문의 이유, 첫째는 “은사”였고 둘째는 “열매”입니다.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은 그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려고 했었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바울이 그들을 만나 그들을 섬길 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믿는 자들은 그 믿음이 견고해지고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는 일이 그들 가운데 열매로 나타나길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다른 이방인 교회를 섬기고 그 섬김으로 열매를 맺었던 것처럼 로마에서도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막혔지만 이제는 그 길이 열려서 로마에 방문함으로 그 일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문의 이유, 셋째는 “복음”입니다.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바울이 믿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을 바울이 그들 중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히 편지의 대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7)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필요했던 것은 그들이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그분의 이름을 위해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복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이 믿고 구원받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로서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고 세워진 교회가 온전히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수고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바울은 분부한 모든 것을 복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방문하려는 이유, 은사와 열매 그리고 복음입니다. 이 세 가지 이유는 표현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 복음은 신령한 은사, 선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물인 복음은 그들의 삶에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바울이 은사와 열매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문의 이유를 “복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정리하면 바울에게 있는 세 가지 이유, 감사의 이유는 믿음입니다. 기도의 이유는 만남입니다. 방문의 이유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바울에게 있었던 이유를 생각할 때 이러한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이유, 기도의 이유, 방문의 이유, 바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는 “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YOU” 당신입니다. 그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감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믿음입니다(8). 기도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를 만나는 것입니다(10). 방문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나누어 줄 은사(11), 너희 중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려고(13),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5). 모든 이유는 그 중심에 “너희”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이유가 너희를 위한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우리는 삶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고 그 이유를 나에게 둘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감당했던 모든 사역은 사람이 그 대상이었고 우리 주님처럼 바울도 사람을 위한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복음을 위해 사람을 섬기는 이유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이유 있는 삶, 그의 삶을 한 마디로 하면 이러합니다.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출신이나 지식수준이나 문화나 사람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바울은 스스로를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무슨 빚을 진걸까요? 우리가 빚을 졌다라고 할 때 두 종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직접적으로 빚을 지는 겁니다. 내가 은행에 대출을 받으면 나는 은행에 빚진 자가 됩니다. 나는 빚진 자로서 내가 빌린 돈을 갚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빚을 지는 겁니다. 가령, 어떤 분이 저에게 돈 봉투를 건네주면서 전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저는 봉투를 받은 그 순간부터 봉투를 전달하기까지 그 봉투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빚진 자가 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빚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함께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날 이후로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복음을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삽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에게 있는 삶의 이유를 “유”에서 “이유”로 다시 말합니다. 두 명의 당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주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삶의 이유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삶의 이유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사람 사이에서 빚진 자로서 복음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빚진 자” 이것이 복음을 믿는 자의 삶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음으로 나의 삶의 이유가 바뀝니다. 삶의 이유가 나에게서 주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의 삶에 내가 아닌 다른 이유가 생겼습니다. 주님이 이유가 되십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 바뀐 내 삶의 이유는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열매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삶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나”인가요? 아니면 “유”인가요?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은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마음의 무너짐을 경험해야 할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단단하고 교만한 마음이 녹아져야 할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로마 교회를 생각해보십시오.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던 로마 교회에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복음을 믿지 않는 분들 뿐만 아니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삶의 이유를 오해하고 그 이유를 다른 곳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여전히 나에게 이유를 두고 나를 위해 사는 분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삶의 이유가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나를 위한 살았지만 이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이유를 나에게 두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진짜 이유가 주님에게 있고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주님의 종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삽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복음을 믿는 자의 합당한 순종의 삶입니다.

 

가정에서 나는 가족을 섬기는 자로 존재합니다. 나는 가정에서 배우자를 섬기며 삽니다. 나는 자녀를 섬기고 나는 부모를 섬기며 삽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만족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사는 겁니다.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러합니다. 나에게 있는 삶의 이유는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