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복음의 일꾼입니까?

본문 : 골로새서 4장 7-18절

설교자 : 조정의

“엔딩 크레딧”(만든 사람 소개 화면)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비디오 게임 등의 영상이 끝나고 제작 참여자들의 명단이 나열되며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얼마 전 온갖 미신이 등장하는 영화, 겨울왕국 후속편의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이름이 소개되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이 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 편의 영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비밀”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셨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온 우주가 볼 수 있도록 상영하고 계십니다. “비밀”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로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골 1:15-17). 그런데 그만 피조물이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게 하심으로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제작하신 놀라운 영화의 줄거리, 복음입니다(골 1:18-20).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고 제작하신 ‘그리스도의 비밀’에 참여한 일꾼들을 만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의사와 종, 유대인과 이방인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모두가 엔딩 크레딧에 그 이름이 나열될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도 복음의 일꾼으로서 단지 복음을 듣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떻게 기록되기 원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총 11명의 이름과 몇몇 교회가 언급됩니다. 편의상 이렇게 구분하겠습니다. 1) 편지 전달자(7-9절), 2) 복음 동역자(10-14절), 3) 연합 교회들(15-18절). 중요한 것은 이 세 그룹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에 함께 참여한 일꾼이었다는 것입니다.

1. 편지 전달자(7-9절) – 두기고, 오네시모
①두기고,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7-8)

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절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절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7-8절에 먼저 언급된 두기고와 9절에 나오는 오네시모의 공통점은 둘 다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직접 알려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를(골로새서) 전달하면서 동시에 바울의 안부를 전해주는 역할입니다(7, 9).

바울은 곁에 있던 많은 사람 중에 특별히 두기고를 택하여 골로새 교회에 보냈는데, 그 이유는 8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골로새 교회가 바울의 사정을 알게 되어 그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일에 두기고가 적격이었던 것입니다.

9절에 언급된 오네시모 역시 같은 임무를 맡았습니다. 두기고와 함께(“그들이”) 바울이 있는 곳의 일을(“여기 일”) 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알려 줄 것이었습니다.

두기고가 바울과 처음 동역한 것은 골로새서 편지를 전달하기 4-5년 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였습니다(행 20:4). 당시 바울은 자신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마게도냐에서 예루살렘으로 직행하는 노선을 취소하고, 아시아로 우회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는데, 이때 아시아 출신인 두기고가 함께 했습니다. 

유대인을 피해 그 지역을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면서 바울은 두기고가 가지고 있는 능력, 여행에 최적화된 능력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에 가택 연금 됐을 때, 두기고는 여러 번 바울의 편지를 대신 전달해주는 편지 전달자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에 보낸 편지(엡 6:21) 그리고 골로새에 보낸 편지(골 4:7)를 두기고가 전달했습니다. 참고로 로마에서 골로새까지는 약 2100킬로미터가 됩니다. 

두기고는 노중의 강도나 길, 강 바다의 위험, 날씨나 건강의 어려움 등 많은 장애물을 넘고 넘어 신실하게 사도의 편지를 전달하는 믿음직한 일꾼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두기고는 바울 대신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와(딤후 4:12) 디도가 있던 그레데로 보내졌습니다(딛 3:12). 디모데와 디도가 바울을 만나러 로마 감옥으로 올 때, 그들 대신 교회를 대신 맡아줄 합당한 인물이 두기고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두기고는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자기의 부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같은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기고는 예수 그리스도께 참으로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착하고 충성된 종’, 마 25:21). 그리고 그런 두기고를 주님께서 사랑하신다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의 종입니다. 목사, 집사, 성도의 신분으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복음의 일꾼으로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신실하냐는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②오네시모,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9)

두기고와 함께 골로새로 여행한 형제의 이름은 오네시모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유익한”인데, 그는 자기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유익한 종이 아니었습니다(몬 1:11). 주인의 물건을 훔쳐 로마로 도주했다가 옥중에 있던 바울을 만나 회심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 불렀습니다(몬 1:10).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장로이자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편지하여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여기라고 요청했습니다(몬 1:15). 오네시모의 회심이 너무나 분명하여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오네시모를 “내 심복”, “내 심장”이라고 부릅니다(몬 1:12). 왜냐하면 오네시모가 바울의 사명인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신실한 일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 오네시모를 가리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 불렀습니다.

더 이상 무익한 노예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신실한 형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복음의 일꾼입니다. 아마도 두기고가 골로새 교회까지 오네시모와 함께 동행하여 오네시모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확증했을 것입니다. 배신자에 도둑이었던 그가 예수님께 사랑받는 신실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과거의 죄가 현재 주님을 섬기는 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냐는 것입니다. 신실한 종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2. 복음 동역자(10-14절)

③아리스다고, ④마가, ⑤유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 바울의 위로(10-11)

10절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절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0-14절에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한 동역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총 6명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10-11절에 나오는 세 사람은 유대인, 12-13절에 나오는 세 사람은 이방인(헬라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이들은 단지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었던 것이 아니라 둘 다였습니다. 

이는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이신 그리스도께 참으로 합당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파나 무할례파 등 아무런 차별이 없이 자기를 위하여 새롭게 만드십니다(골 3:10-11).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세 명의 유대인 일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칭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표 중 하나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 복음 사역에 참여했던 자입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숭배자들이 소동을 일으켰을 때 군중에 붙들려 체포되었습니다(행 19:29). 그 이후에는 두기고처럼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여행길에 함께 했고(행 20:4),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혀 로마로 압송될 때 바울과 함께 그 길에 동참했습니다(행 27:2). 

로마로 가는 길에 배가 난파되고 겨우 살아남아 무인도에서 목숨을 보전하는 등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며 겪은 많은 고난에 아리스다고도 함께 동참한 것뿐만 아니라 10절을 보면 현재 바울과 “함께 갇힌”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에까지 전달되는 하나님 나라 사역에 함께 힘쓴 일꾼이었습니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 바나바의 조카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부조하는 데, 바울과 바나바가 그 일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였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가를 데리고 왔습니다(행 12:25). 참고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내준 다락방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모였습니다(행 12:12, 최후의 만찬 장소).

안디옥 교회가 성령의 지시로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파송할 때 마가는 그들과 함께 했던 초창기 멤버입니다(행 13:1-3; ). 하지만 사역자로서 그는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역지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며 도중하차했습니다(행 12:25).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두 번째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 크게 싸우고 각자 찢어져 사역을 하였습니다(행 15:36-41).

약 10년후 바울은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비판했던 마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역사하는 자로 소개합니다. 마가는 한 번의 실패로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회복되어 신실한 일꾼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마가를 영접하라, 잘 대해주고 받으라고 요청했습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 부릅니다(몬 1:24). 또한 후에 감옥에서 순교를 앞두고 있었을 때, 디모데에게 부탁하여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평가했습니다(딤후 4:11). 한때 마가는 바울의 근심이요 실망 거리였지만, 지금 마가는 그의 위로가 되었습니다(11).

사도 요한의 제자 파피아스의 기록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이 죽고 나서 베드로의 통역을 맡아 일했고(“내 아들 마가”, 벧전 5:13), 베드로를 통해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애굽의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개척했고, 마가복음을 기록한 직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일하다 미끄러졌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끝까지 그 일에 함께 역사했던 것입니다.

유스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올바른”, “의로운”이며 히브리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이름이 부담스럽지요? 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1세기 유대인 가운데 널리 쓰인 이름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스도 역시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한 일꾼이었다는 것입니다.

⑥에바브라, 교회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수고하는 자(12-13)

12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이제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역사한 이방인 일꾼 세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에바브라입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일꾼입니다. 바울은 편지 인사말에서 에바브라를 가리켜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소개했습니다(골 1:7).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울과 함께 “갇힌” 상태였습니다(몬 1:23). 아마도 로마에 가택 연금된 바울을 수종 하면서 그 안에 자발적으로 함께 갇혔던 것 같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개척자이자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지역에 복음을 전한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그 지역에 불던 거짓 가르침의 위협을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전달했고 그래서 바울이 그에 대한 주의 가르침을 편지로 적어 두기고를 통해 전달했던 것입니다. 그 편지가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라가 얼마나 “애써”, 헌신적으로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지 알려주기 원했습니다. 에바브라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애써 기도하신 그 마음으로 골로새 성도를 위해 항상 애써 기도했습니다. 어떻게든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거짓 가르침에 속아 예사람과 그 행위대로 살지 아니하고, 새사람을 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영적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영적 아비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성도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 있는 성도를 위해 많이 수고하고 있음을 그들로 알게 하기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의 씨를 뿌려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신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일꾼이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수많은 위험을 무릎쓰고 강행하여 바울을 만나 자신이 돌보는 영혼들에게 닥친 위험을 알리고 그에 대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영혼을 위해 항상 애써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을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는 인도자였습니다(히 13:7). 성도를 이처럼 사랑하고 성도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수고하는 일꾼이 진실로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에바브라와 같은 일꾼이 많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⑦누가, 사랑을 받는 의사 그리고 ⑧데마(14)

14절 사랑을 받는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다음은 누가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갈라져 선교 여행을 떠났던 제 2차 전도 여행 때 바울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행 16:6-17).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복귀할 때 바울과 함께 했고(행 20:5-15; 21:1-18), 로마로 끌려갈 때 함께 했습니다(행 27:1-28:16). 2년 정도 로마에 가택 연금된 기간 내내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도왔던 사람이 바로 누가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매 맞고 돌로 맞고 옥에 갇히는 등 건강을 해치는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 돌봐줄 주치의가 옆에 붙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의사인 누가입니다.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말했는데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딤후 4:11). 누가는 또한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아주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누가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의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직업으로 주님을 섬기면서도 복음의 일꾼으로 동역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곡을 쓰는 것으로도 말입니다.

데마는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 중 하나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2차 투옥된 시점에서 그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세속적인 이유로 복음 사역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데마의 구원 여부를 논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복음 사역보다 세상적인 것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책망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사람이었습니다(계 3:15).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데마처럼 미지근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서 떠나 세속적인 것을 좇아 삽니다. 마치 자기는 하나님이 구원만 하시고 복음의 일꾼으로는 세우지 않은 것처럼 삽니다. 하나님 나라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누구도 데마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엔딩 크레딧에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나열되지 않기 원합니다. 마가처럼 한 번 뒤처지고 떨어진 적이 있더라도 끝까지 신실한 주님의 일꾼으로 다시 일어나 힘써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3. 연합 교회들(15-18절)

라오디게아 형제들, ⑨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 골로새 교회(15-16)

15절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절 이 편지를 너희에게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이제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연합한 교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7절부터 시작된 바울의 마지막 인사말은 이례적으로 긴 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기와 함께 복음의 일꾼 된 사람을 소개하고 그들의 인사를 전합니다(“문안하느니라”). 그리고 15-16절에서는 교회가 서로서로 교류할 것을 요구합니다.

15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자매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킵니다.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가정 교회를 가리키는 데, 눔바라는 자매가 아마도 루디아처럼 교회의 건물을 제공하고 필요를 공급하는 부유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 그리고 그 교회에 속한 작은 공동체에 인사하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로도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골로새에 보낸 이 편지, 골로새서를 라오디게아에 보내 그들도 읽게 하라고 명합니다. 또한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가 있으니 그것을 골로새 교회도 읽으라고 명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라오디아를 거쳐 골로새로 오는 이 편지를 에베소서로 봅니다. 에베소서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에베소”라는 말이 없는데, 그래서 에베소서는 단지 에베소 교회를 위해 쓴 편지이기 보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서 돌아가며 읽히기 위해 쓴 회람 편지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교회가 서로서로 교류하기를 그리고 사도의 같은 가르침 아래 연합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처럼 복음으로 연합하고 건건한 교리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⑩아킵보(17)

17절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자, 이제 17절에 나오는 아킵보입니다. 아킵보는 에바브라가 없는 동안 골로새 교회를 맡아 사역하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그를 가리켜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라고 불렀습니다(몬 1:2). 그러므로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는 권면은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골로새교회를 보호하고 끝까지 일꾼으로서 자기 사명을 다하는 권면입니다.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위해 항상 애써 기도한 것처럼 아킵보는 성도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수고하고 애써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세워진 일꾼은 반드시 이 일을 삼가 이루어야 합니다.

⑪바울(18)

18절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마지막으로 저자 바울이 등장합니다. 18절은 오늘날 편지의 서명과도 같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편지지(파피루스)가 귀하여 아끼기 위해 짧고 간결하게 편지를 작성하도록 훈련된 필사자를 통해 편지를 받아 적어 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편지의 마지막엔 저자가 자필로 서명을 하여 편지의 진정성을 확증했는데, 18절에서 바울이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고전, 갈, 살후). 

바울의 마지막 격려의 말은 이것입니다.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은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여 나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내가 매이기까지 수고한 것을 생각하여 너희도 더욱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이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일에 함께 하기를 바울은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권면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바울의 권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 그리고 그와 복음 사역에 동참한 모든 이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의 삶으로 소리칩니다. 

‘우리가 매인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많이 수고한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복음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걸어갔던 길, 끝까지 신실하게 완주했던 삶을 기억하라. 서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고 같은 믿음 안에 든든하게 서려고 항상 기도하고 노력했던 것을 생각하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죽기 전에 남긴 말처럼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여러분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기 원하십니까? 바울처럼 크고 위대한 이름은 아니어도 좋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남으면 됩니다. 유스도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신실한 일꾼으로 남기 원합니다. 마가처럼 넘어진 적이 있더라도 데마처럼 완전히 세상으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리스도 예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남게 되기를 항상 애써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