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 : 골로새서 3장 18-21절

설교자 : 조정의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하는 새사람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3:12-4:6). 오늘은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가족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바울은 크게 두 가지 관계,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18-19), 부모와 자녀의 관계(20-21)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남편, 아내, 혹은 누군가의 부모, 자녀일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분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하나 이상, 세 개까지 해당).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각각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모습, 새사람의 모습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오늘 성령의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되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의 삶을 각각의 관계 속에서 힘 있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8절에서 21절까지 각각의 구절이 명령하는 대상이 달라지고(아내들아, 남편들아, 자녀들아, 아비들아), 대상에 따라 하나에서 두 개의 명령어(19)가 주어졌습니다. 그럼 18절, “아내들”에 대한 명령부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족 관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가족”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특별히 성 정체성의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성경이 말하는 가족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를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1:28). 동성끼리는 이 명령, 하나님의 형상을 온 땅에 충만하게 채우라는 하나님의 뜻을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와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를 돕는 배필, 곧 생물학적, 정신적, 관계적인 면에서 그를 보완하고 도울 수 있는 존재인 “남자에게서 취”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창 2:23). 두 사람은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창 2:24). 바로 이것이 인류 최초의 부부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최초의 가족입니다.

성경은 동성애나 동성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동성애를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하셨고(레 18:22), 동성애를 행한 사람을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레 20:13). 신약 성경 역시 동성애에 대한 구약 성경의 기준을 확증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는 것을 죄라고 말하고(롬 1:26-27), 고린도전서 6장 9절에서는 “남색 하는 자” 곧 동성연애를 하는 자를 “불의한 자”라고 지적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강력하게 꾸짖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정의하는 가족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룬 것으로, 남녀 두 사람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하나로 연합한 관계, 하나님이 짝지어 주셔서 함부로 나눌 수 없는 언약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구약성경에는 한 남자와 여러 아내, 즉 일부다처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지만, 성경은 절대로 그것을 지지하거나 권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관계 속에서 참 많은 죄가 발생하고 그 죄의 결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이 정의하고 지지하는 부부 관계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언약으로 연합한 관계입니다.

자, 그러면 성경이 정의하는 부부 관계 속에서 아내의 의무이자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내는 어떤 새사람의 옷을 입어야 할까요?

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18)

18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ὑποτάσσεσθε)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부부 관계 속에서 아내의 역할은 남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이룬 관계 안에서 “복종”이라는 의무를 갖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역할은 복종하는 것입니다.

혹시 군대식으로 ‘하라면 해’, ‘명령에 무조건 순종해’라는 식으로 “복종”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남편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주어진 명령, “복종하라”는 20절에 자녀들에게 주어진 명령 “순종”이나 22절에 종들에게 주어진 명령 “순종하라”와 같은 명령이 아닙니다. 사용된 단어가 다릅니다.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 “복종하라”는 자발적인 복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두신 권위 아래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신 것처럼(빌 2:7; 고전 11:3), 스스로 낮은 자리, 순종의 자리를 자발적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과 180도 다른 의미로 바울 당시 문화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의 권위나 인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남자가 비겁한 삶을 살면 다음 생애에는 여자로 환생한다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는 자유인 남성과 노예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이교도 문화에서는 여성이 물건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사회적인 약자가 되어 남성의 욕구나 욕심을 채우는 일에 이용되는 등 여러 가지 차별과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대교 역시 기도 중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최악은 이슬람교입니다. 여자는 절대로 남자보다 앞서서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유일한 예외는 앞에 지뢰가 있을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그런 문화를 완전히 뒤집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격적으로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둘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동등합니다.

그러면 “복종하라”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내가 남편과의 관계 속에 맡은 역할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아내 외에도 여러 대상에게 “복종”이라는 역할을 명령하는데,  남녀 불문하고 하나님이 위에 세운 권세에(롬 13:1), 교회의 일꾼에게(고전 16:16), 육신의 상전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딛 2:9). 

이 땅에 세워진 권세가 시민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교회 일꾼이 성도보다 더 높은 신분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상전이 종보다 더 위대한 존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각각 그 관계 속에 맡겨진 역할이 다른 것입니다. 

시민의 역할은 순종이고, 권세의 역할은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역할은 순종이고, 일꾼의 역할은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종의 역할은 순종이고 주인의 역할은 종의 필요를 돌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역할은 가정을 사랑으로 인도하고 다스리는 것이고, 아내의 역할은 복종입니다.

아내이신 분들은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역할은 “복종”입니다. 복종은 “주 안에서 마땅”히 여러분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인도자, 머리로 남편을 세우셨고(엡 5:23), 여러분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통하여 세상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마땅히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봅니다(엡 5:24). 심지어 사도 베드로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남편, 즉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순종하여 혹 그가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벧전 3:1).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입어야 할 새사람은 복종입니다.

2.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19)

19절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랑하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괴롭게 하지 말라”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니, 사랑하라는 명령은 알겠는데, 괴롭게 하지 말라는 명령은 왜 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나요?

“괴롭게 하다”에 사용된 단어는 계시록에서 3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맛이 “쓰거나” “신” 것을 의미합니다(‘쓴 물’, 계 8:11; 10:9, 10). 도덕적인 의미로는 ‘악독’을 뜻하는데, 말이나 행동으로 악한 일을 아내에게 행하는 것,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아내를 막 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본문에서 이러한 악독한 모습을 찾아보면, 바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 3장 5절과 8절에 나오는 여러 가지 악독한 옛사람의 행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두고 음란하고 사악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분노를 퍼붓거나 더러운 말과 비방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이것을 분명히 금하셨습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남편이신 분들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는 일, 아내에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죄를 범하는 일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말과 태도와 행동에 습관적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봉사와 예배를 드린다 해도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부부 관계에서 맡은 분명한 역할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명령은 ‘아가파오’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5절에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타적이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희생적이어야 합니다. 단지 감정적으로 혹은 성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최고의 관심 대상으로 두며, 아내의 이익을 나의 이익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아내의 행복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내 아내는 보통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계없이 부부 관계 속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세상에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이자 하나님의 원수였던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여줄 사랑의 깊이, 따라야 할 사랑의 본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남편이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입어야 할 새사람은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부 관계 속에서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입어야 할 새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내는 복종, 남편은 사랑을 입어야 합니다. 각각의 명령은 상호 책임을 촉구합니다. 사랑이 풍성한 남편에게 아내는 기쁨으로 복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께 하듯 복종하는 아내를 남편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상호 책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대로 사랑을 보여줘야 내가 복종하지’, ‘당신이 복종해야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이런 식으로 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나오는 “주 안에서”를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의 역할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하는 것을 봐서 자기 역할에 충성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보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강, 말씀과 이름으로 옷 입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먼저 보이신 사랑을 힘입어 각각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에게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워룸이라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기 남편이 거의 외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남편은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합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느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습니다. “나의 만족이 당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만족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배우자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기쁨으로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의 영원한 만족이 되시고, 그분 안에 부부가 각자 맡은 역할을 담당하는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과 지혜로 부부 관계를 아름답게 빚어가십니다. 서로 사랑하고 복종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화시키고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는 분들은 부부 관계 속에 고통과 갈등을 가져오는 죄를 몰아내시는 예수님을 여러분 마음과 가정으로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복종을 채우시는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 속에서 자녀의 의무이자 역할은 무엇일까요? 자녀는 어떤 새사람의 옷을 입어야 할까요?

3.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20)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ὑπακούετε)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순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순종”은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할 “복종”보다 더 큰 강제력을 가진 것으로, 바울은 “모든 일에”라는 말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참고로 본문이 말하는 “자녀들”은 어린아이부터 성년 자녀까지를 포함하며, 가장의 권위 아래 있는, 다른 말로 하면 집에서 독립하지 않은 자녀를 가리킵니다.

어떤 부모는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룬 자녀에게까지 자기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셨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정을 이룬 자녀는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가정을 이룹니다. 부모는 독립된 자녀에게 좋은 권면과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라도 본문이 말하는 “순종”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아직 결혼 전이지만 성인이 되어 더 이상 가장의 권위 아래 있지 않고 독립한 자녀 역시 “순종”의 의무를 갖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것은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지만, 본문이 말하는 순종은 오직 부모의 권위 아래 있는 자녀에게만 해당합니다. 이 부분은 부모에게 준 명령을 살펴보면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자녀는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자녀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절대적인 태도와 행위를 요구합니다. 귀찮아하고, 지겨워하고, 말대꾸하고,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알겠습니다’라고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태도를 갖추고 부모의 말에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 독립하기 전까지 하나님은 자녀를 부모의 권위 아래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결국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사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부모에게 권위를 주신 하나님에게 막 대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 딕 루카스는 “성경 안의 이야기들을 보면 버릇없는 자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좀처럼 배우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 신실하면서 부모에게 버릇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들도 꼭 기억하십시오.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로 자라기 힘듭니다. 보이는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도 무시하기 쉽습니다.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부모가 성경에 명백하게 반하는 것을 명령하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한다든지. 20절 후반부를 보시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명령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라면, 자녀는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는 태도를 갖추되 담대하고 성실하게 그 명령에 불복종할 수 있습니다. 

주께 기쁨이 되기 위해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고, 주께 기쁨이 되기 위해 때로 불순종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일에 주님께 기쁨이 되는 일을 하십시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4. 부모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21)

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이제, 마지막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 속에서 부모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21절을 보시면 명령의 대상은 “아비들”, “아버지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적용할 수 있는 명령이지만(히 11:23), 보통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가정에서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아비들”에게 이 명령을 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 아버지들이 부모와 자녀 관계 속에 따르기 원하신 것, 입기 원하는 새사람의 옷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기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만일 이 말씀이 자녀가 화를 내지 않도록, 속이 상하지 않도록 하라고 이해한다면,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결국 자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다”는 분노하게 하고 원한을 갖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잔소리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고 훈계하기 위해 엄중한 말과 규칙과 때로 체벌을 가하는 것을 금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 과정 중에 아이를 막 대하거나 무시하거나 자기 분노를 쏟아붓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엔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지 않아서 많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납니다. 아이를 꾸짖거나 체벌을 가하는 것이 아이를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이가 기본적인 예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학교나 사회에 나와 마땅히 존경하고 예의를 갖춰야 할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면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그것이 잘못인지 몰라서 그랬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마땅히 옳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처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는 것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식을 근실히 징계합니다(잠 13:24).

하지만 그런 훈육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괴롭게 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복사판이 되도록 자녀의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려고 하거나, 부모의 환상을 대신 만족시킬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훈육할 때 분노하거나 죄를 쏟아부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골 3:21).

특별히 가정에서 독립된 자녀에게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는 부모는 아무리 그것이 자녀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조언을 하되, 순종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보통 자녀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남겨진 자녀가 독립적으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마치 두 발 자전거를 아이가 탈 수 있도록 뒤에서 붙잡아주다가, 손을 놓고 아이가 스스로 자전거를 타도록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자전거 뒤를 붙잡고 못 놓는 부모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독립한 자녀의 삶을 통제하려 하지 마십시오. 옆에서 지혜로운 조언을 하되 주님께 그들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넘어지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나친 간섭과 통제, 분노와 강요는 아이가 낙심하여 자신감을 잃고 쓸데없는 죄책감과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살도록 밤낮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가족 관계, 특히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관계 속에 하나님이 두신 각자의 역할을 배웠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각각 순종해야 할 명령의 대상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떤 면에서 내가 더 순종하기를 원하나요? 혹시 내가 너희를 노엽게 하고 있지는 않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순종, 공경, 그리고 주의 교훈과 훈계가 넘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