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
본문: 누가복음 14장 15~24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하신 말씀들 중 하나입니다. 많은 율법교사들, 바리새인들이 초대된 자리에 예수님도 초대되셨고 어색하고 썰렁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 자리에 수종병 든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고 “너희 자식이나 가축이라면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식사자리가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삭막하고 어색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이 때 초대받은 사람들이 와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느낀 사람들은 마음이 찔리고 분개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초대한 사람에게는 “나에게 이득이 될만한 사람만 초대하려고 하지 말고 정말 은혜가 필요한 사람, 자비가 필요한 사람을 초대하여 값없이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받은 사람도, 초대한 사람도 어색하고 썰렁한 분위기에서 딱딱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한 사람이 이렇게 분위기 쇄신에 나섰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 “자자, 어쨌거나 우리가 나중에 참여할 하나님 나라 잔치는 참 대단하겠죠? 그쵸?”이런 식의 농담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웃자고 던진 그의 농담에 진지하게 비유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결론은 “그 좋은 하나님 나라 잔치, 사실 너희는 참석하지 못할 것이다. 초대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초대받은 너희가 스스로 거절하기 때문이다.(24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약속된 유대인이 하나님 나라의 왕인 예수님이 왔을 때 스스로 그 왕을 거절하고 있음을 탄식하며 이 비유로 그들의 상태를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유대인이 얼마나 큰 특권을 받았는지, 그들이 이 특권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또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 나라 잔치의 준비(16)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16)

비유 속에 나오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습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내 잔치”라고 말씀하시는데 결국 이 잔치는 하나님 나라 잔치를 가리킵니다.

잔치에는 보통 누가 참석할 수 있습니까? 오직 초청받은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초청 받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잔치는 주인의 호의, 자비, 은혜의 선물입니다.비유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미 초청을 받았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떡을 먹을 것을 기대했던 것처럼 실제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이미 초청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 당시까지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석할 특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셨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애굽의 노예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홍해를 가르고 구출하여 약속의 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출 24:11)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같은 백성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초청을 확인해주셨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좋은 꼴을 먹이고 좋은 우리에 누우며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양의 목자가 될 것이다”(겔 34:14)고 말씀하셨고 선지자 요엘을 통해 너희는 풍족히 먹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고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요엘 2:2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된 특권을 가진 백성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사야서에 분명한 하나님 나라 만찬에 대한 약속(사 25:6-8)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 초청을 잊어버리고 거절하려는 백성에게 끊임없이 이 약속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려거든 내게 돌아오라. 내가 너희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할 것이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초청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54-5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선지자들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 만찬으로의 초청을 확증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 같이 축복 받은, 하나님의 오랜 초청을 받은 특권을 입은,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를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천하에 어떤 민족도 이런 특권을 입은 적이 없었습니다.

2. 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17)”

잔치가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주인은 종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만찬이 준비되었으니 참여하면 된다고 소식을 알립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땅에 와서 자기 백성에게 하신 말씀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마다 회당마다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눅 10:9, 11 11:20)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 2천년동안 기다려왔던 하나님 나라 만찬이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수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보리떡과 물고기로 먹고 마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외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 7:37)”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마치고 “다 이루었다”를 외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만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율법에 비춰보면 절대로 그 만찬에 참석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의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사람들에게 다 준비가 되었으니 나에게 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오늘 본문과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예복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거룩한 의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정말 가까이 왔으니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라 간다면 그들은 수 천년동안 기다려온 만찬에 드디어 참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그 요청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3. 하나님 나라 잔치의 거절(18-20)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 속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18절)고 말합니다. 당일 만찬을 하기로 한 그 시간에 하나같이 주인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주인의 호의를 멸시하고 우습게보지 않는 한 거절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거절했습니까?

–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다”(18)

–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한다”(19)

– “나는 장가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20)

처음 두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밭을 소유한 사람이 적고 소도 보통 한, 두 겨리(쟁기)였는데 이 두 사람은 밭을 살 정도로 부유하고, 소는 다섯 겨리(10마리)나 있었습니다. 30만평의 밭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사람은 중요한 부동산 계약을 위해 또 한사람은 소를 시험해보려고 잔치를 거절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합당한 이유처럼 보이지만 주인의 잔치를 거절할 만큼 합당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예의 있게 거절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이제 막 장가를 들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막 장가 든 사람은 군대로 내보내지 말고 아무 직무도 맡기지 말며 한가하게 집에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고 하였는데(신 24:5), 아내랑 보내는 시간이 중대하니 만찬은 부득이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합니다.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세 사람이 제시한 이유는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잔치를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약속된 잔치를 당일에 그것도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이유로 거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 사람들이 예의 없고 악하며 주인을 멸시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만찬을 배설한 주인,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눈앞에서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나와 함께 잔치에 참여하자고 초대하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이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너는 요셉과 마리아의 자식 아니냐? 형제자매도 우리가 다 아는데…(눅 4:22)”라며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사랑했습니다. 바리새인, 율법교사로서 사회적으로 누렸던 영향력, 부, 권력, 인간관계(마 19:20)에 대해 자부하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했던 부자청년도 재산이 많으므로 후회하고 돌아갔습니다. 셋째로 자신들이 내세운 자기의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전통과 관습에 따르면 나는 예수가 필요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성전에 올라가 했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자신이 세리와 같지 않은 의인임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기 죄가 드러나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식사 초대 자리에서 수종병 든 사람에 대해 “너희 자식이면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 마음속의 죄책감으로 인해 분노해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예수님을 거절했는지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종합해서 교만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자손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이방인이나 죄인에 대해서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돌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그들 앞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권위 있는 말씀과 이적을 보여주고 계심에도 하찮게 여깁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보다 낮게 여기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그 하나님보다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도 분노하고 교만하게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놀라운 특권들을 2천년동안 이어져 왔던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거절한 것입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바로 너희는!)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24)”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 만찬에 가면 좋겠죠?”라는 농담에 예수님은 “정작 너희가 그 나라를 거절하고 있고 거절하는 그는 내 잔치에 절대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4. 하나님 나라 잔치에 대신 초대된 사람(21-24)

이 비유에서 원래 초대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거절한 자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자비와 은혜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흘러넘쳤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다른 사람들을 그 만찬에 초대하기 원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21)” 이 사람들은 죄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난과 질병을 죄의 원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찮게 여기고 당연히 하나님 나라 만찬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여긴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 자리를 대신하여 만찬에 초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방인들에 대한 초대가 23절에 나옵니다. 그래도 자리가 다 차지 않자 주인은 더 멀리 나가서 사람을 불러 모으라 명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는 것은 성 밖을 말하고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은 지옥을 불태울 장작이며 은혜 밖의 사람들, 아니 개와 같은 짐승이라고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침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차버린 복을 이제는 이방인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지금 참석한 잔치의 주인에게 초대하려거든 갚을 것이 없는 불쌍한 자를 초대하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그런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가난한 사람, 몸 불편한 사람, 맹인, 저는 자 그들은 사회적으로 구걸하여 살아남는 자로 소유가 거의 없는 그래서 초대받은 것에 대해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 겸손히 은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과거 다윗 왕은 다리를 저는 한 거지, 므비보셋을 궁으로 불러다가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므비보셋은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밭이 있어서, 소가 있어서 같이 먹을 수 없네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는 절하면서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삼하 9:8).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가 너무 귀하고 좋아서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죽은 개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 마음에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하나만 품고 있는 사람, 잔치를 베푸신 왕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는 겸손한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을 보면서 엄청난 특권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하찮은 이유들로 이 복을 스스로 차버릴 수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이 은혜가 들어온 지 2천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롬 11:20-21).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구약의 성경을 보면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을 때 하나님께서 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의 잔치를 계속해서 거절하고 계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거나 말씀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여겨서 혹은 여러분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혹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사랑스럽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서 이 놀라운 특권을 계속 거절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이상 특권이 없다고 하신 경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지만 완곡한 표현으로 변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J.C.라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신과 부도덕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나, 근사하고 그럴듯하면서 완곡하게 표현된 변명들로 인해서는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않으려는 그 어떠한 변명도 인간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언젠가 당신이 만찬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로서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당신이 거절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놀라운 것이었는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위대한 것을 거절하면서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움켜쥐고 있던 것이 얼마나 가치 없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지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토록 슬피 울면서 이를 갈 정도로 억울해하고 좌절하며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오늘 이 초대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눈앞에서 거절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초대에 응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비슷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초청을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오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가자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초청에 바로 응하시겠습니까?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보이시겠습니까? 오늘 이 땅을 떠나도 아무런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