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하나님의 승리
본문 : 사무엘상 17장
설교자 : 최종혁
본문 말씀은 주일학교 학생들부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다윗과 골리앗 사이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1-3절). 이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 대한 설명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고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산은 언덕과 같아서 이쪽 언덕에 이스라엘이, 저쪽 언덕에 블레셋 진영이 있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때 블레셋 진영에서 한 사람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4절). 그리고 본문의 저자는 골리앗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키가 270-290센티미터(또는 그 이상) 되고 그의 갑옷의 무게는 55킬로그램이나 됩니다. 창의 날이 약 7킬로그램 되는, 우리가 들기도 힘든 그것을 공격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위협적인 전사의 모습입니다(5-7절).
그가 블레셋 진영에서 나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8,9절). 엘라 골짜기 양쪽 언덕에 군대가 대치하고 있고, 그 중 블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나와서 다른 쪽 진영을 보며 외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내려 보내서 일대일로 싸우고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하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있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10절).
그에 대해 이스라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 골리앗이 블레셋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한 용사였다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용사는 사울이었습니다.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삼상 10:23,24). 사울은 키가 월등히 컸고 그와 짝할 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조차 골리앗을 보고 놀라서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던 중, 말씀은 멀리 유다 베들레헴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12절). 이새의 여덟 아들들 중 셋이 전쟁에 나가있고 다윗은 아비의 양들을 돌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전장으로 보냅니다.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심부름을 보낸 것입니다. 블레셋 용사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있는 전장으로 말입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20절). 골리앗과 다윗이 멀리 떨어져 있다가 만나게 된 상황입니다. 40일 동안을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도발하고 있던 골리앗이 그날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말했고, 마침 그것을 다윗이 듣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여전히 도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24절). 다윗은 엘라 골짜기에서 조금 올라오기까지 하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심히 두려워했지만 자신들이 모욕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25절). 그리고 그를 죽이는 자에게는 사울 왕이 여러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누구든지 싸워 이기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너무 두렵고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이제 다윗이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첫 번째 말입니다.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26절). 자신이 나가서 싸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절). 다윗 이전에는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고, 골리앗을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도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을 “할례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7-11),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3,1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 땅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설득하여 애굽으로 보내신 하나님이 다시 그를 죽이려고 하시다니 뭔가 이상해보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은, 모세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할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주신 명령이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쳐야 하는 상황, 적군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싸우러 나갈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아 누워있어야 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전술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바로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그들에게 두셨습니다(수 7:8,9). 이스라엘의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 12:22). 언약의 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이 땅에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모욕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다윗이 보고 있었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한 장수가 도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한 이방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에게 큰 형 엘리압이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28절). 그는 다윗의 동기를 의심하고 어린 마음에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사울 역시 다윗을 부릅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33절). 사울은 그의 능력을 의심합니다. 다윗은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그에 비해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였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34,35절). 다윗은 자신이 사자와 곰을 쳐 죽였던 경험을 말합니다. 사자와 곰도 이겼으니 골리앗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나 사울은 그렇게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6, 37절을 보면 다윗이 말한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36절). 다윗이 사자와 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톱에서 건지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이상 누가 더 강하고 약하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싸우려는 적이 사자나 곰도 아니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이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자와 곰에게서도 나를 구하셨는데 하물며 이런 자에게서 나를 건져내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저자는 골리앗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와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골리앗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도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보고 있었던 것은 그의 외모나 갑옷이나 무기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고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치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그와 싸우러 나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던 다윗이 맨손으로 나가지 않고 뭔가를 열심히 준비합니다. 먼저 사울의 갑옷을 입어보고 익숙지 않아서 벗습니다. 그는 시내에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가져옵니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적당한 수의 돌입니다. 물매는 그냥 장난감이 아닙니다. 물매는 당시 활의 역할을 했던 전쟁의 무기입니다. 다윗은 나름대로 최선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41절). 이제 골리앗과 다윗이 가까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42절).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도발을 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다가 끝내 나타난 한 사람이 거대한 장수도 아니고 예쁘장한 소년이 나온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이 전사로서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골리앗은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42,43절). 골리앗의 갑옷과 창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무기를 가지고 나온 다윗을 보고, 골리앗은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그를 죽일 뿐 아니라 그 시체도 모욕하겠다고 확언합니다. 어쩌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5절). 골리앗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다윗은 무기가 물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은 승리를 확신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6,47절). 다윗은 자신의 승리, 곧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의 구원이 칼과 창에 있지 않음을 그 자리에 있던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알리리라고 확언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했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바로잡기 위해서 싸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8,49절). 전투는 순식간에 끝납니다. 본문을 기록한 저자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고 골리앗은 쓰러집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그의 머리를 자르고 싸움이 끝납니다. 블레셋의 패배이고 다윗과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다윗의 용기, 그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 다윗이 왕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것, 왕으로 기름을 부은 받은 사람이 양을 치고 있을 정도로 겸손했다는 것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이야기를 기록하신 목적은 우리가 다윗 자체에 주목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46절과 47절에 우리가 주목할 것, 꼭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6,47절).
하나는, 온 땅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골리앗도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신은 구원할 수 있는 신이고, 다른 신은 구원할 수 없는 신이었습니다. 아니 존재하지도 않는 신입니다. 인간이 만든 신이 인간 이상을 할 수 있을리 없습니다. 다윗의 신은 인간을 지은 하나님, 역사의 주권자로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던 하나님, 다윗이 직접 경험했던 하나님이십니다. 미래를 알고 계시고 그것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은 둘 다 확신을 가지고 말했지만 다윗의 확신만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이 참된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이야기도 이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과 경쟁하지 않으십니다. 경쟁할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경쟁시킵니다. 인간이 다른 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경쟁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들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우상에 속고 있었습니다. 그 우상에 속아서 하나님이 모욕 당하시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고 하나님의 구원은 창과 칼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칼과 창에 의존하여 그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승패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최선의 준비를 했지만 객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승리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인간의 어떠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윗도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그는 그것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두 손에 막대와 물매를 들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약한 다윗을 이기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창과 칼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대한 장수와 싸울 상황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언약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할 때, 말씀을 통해서나 여러분의 삶을 통해 돌이켜볼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살아계심에 의심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역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이 땅에 드러내고, 하나님의 구원이 창과 칼에 있지 않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고, 그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