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정치인들의 자녀에 대한 소식이 뉴스에 나올 때가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로 인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한동안 뜨거운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와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비난이 이어집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누군가 노력 없이 뭔가를 얻은 것에 대해서 자격 없는 자가 특혜를 받는 것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특혜를 받은 자녀들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특혜를 받은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수고한 것이 없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엄청난 특혜,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특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 특혜를 제대로 알고 그 가치를 이해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뉴스에 나온다면 이런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특혜, 이 정도일 줄이야 상상을 뛰어 넘어!’
그런데 정작 이 특혜를 받은 우리는 어떠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특혜를 제대로 알고 그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특혜를 놓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특혜를 잊어버릴 수 있고 모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혜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믿는 자의 삶을 두고 오해하고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특혜를 모른다면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에 향한 감사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삶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특혜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받은 특혜를 잘 알고 또 잘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특혜가 무엇인지 알면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하고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놀랍고 대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 놀라운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로마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혜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8장에서 바울은 특별히 성령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어떤 일을 하십니까?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지난 본문과 비교해서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1~13절까지의 성령님은 “생명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14~17절까지의 성령님은 “양자의 영”으로서 우리를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가진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인도함(14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는 특혜, 첫째는 ‘인도함’입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특혜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보다 더 우선되는 질문,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에 대해서 적용했었던 표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르는 사람이며 성령이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합당한 길로 안내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특혜입니까! 이 일을 성령님이 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제하시고 우리를 움직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선하신 뜻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성령이 거하는 자,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도함을 받을 수 있나요? 성경을 보면 성령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직접 말씀하셔서 그 뜻을 전달하실 때도 있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십니다. 그 마음에 선한 소원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도 하시고 성령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믿는 자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앞두고 특별한 인도하심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가 더 좋은 선택을 해서 실수를 피할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을 좀 더 살펴보면 그런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할 때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14절 말씀이 “무릇”으로 시작됩니다.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은 13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3절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있는 몸의 행실, 죄의 본성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내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본성을 죽이며 살면 그렇게 우리가 성령의 통제를 받으며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 그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미워하시는 죄를 나도 미워하는 것이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도함을 특혜라고 했을 때 사실 특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렇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숙제처럼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냥 편하게 살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나쁜 말하고 싶을 때 나쁜 말하고 내 본성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있는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때그때 바로 갚아주고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특혜 같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더 어렵고 힘들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진정 특혜입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 아름다운 삶, 더 가치 있는 삶, 더 멋진 삶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 삶을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삶으로 가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빚어 가는 겁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육신의 눈으로 보면 인도함을 받는 것이 고달픈 삶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과 마음으로 보면 이것이 왜 특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특혜로 보이십니까?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삶으로 초대되었고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다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계속 인도함을 받으며 특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2. 친밀함(15-16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는 특혜, 둘째는 ‘친밀함’입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특혜로 누릴 수 있는 친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 역시도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의 영”, 종의 영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만, 양자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오는 그런 친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심판을 받을까봐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날에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공의로우신 재판관 앞에 두려움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아버지 앞에 평안과 안도함을 가지고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섬김의 동기와 이유가 되는 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순종의 이유는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양자의 영”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조금 더 분명하게 하면 ‘아들 됨의 영’, ‘입양의 영’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자녀를 삼는 행위, 입양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그 당시의 로마 법률에도 입양된 자녀에게는 친자녀에게 주어지는 모든 법적 권리가 특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부모들이 특별한 목적으로 뛰어난 자녀를 입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입양하셨습니까? 당시 로마의 문화로 하면 그냥 버려질만한 가치 없는 자를 입양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였습니까? 우리는 죄의 노예였고 마귀의 자녀였고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를 입양하셨습니다.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시작에서 그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에 의한 것입니다. 입양에 있어서 자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아버지가 대가를 지불하셨고 법적인 모든 절차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렇게 완전하게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로서 모든 권리와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릅니다. 아빠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때 사용하셨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머리로 아는, 그렇게 책으로만 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머릿속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알아갑니다.
루터는 ‘아빠’ 라는 이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작은 한마디 말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아빠는 입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인해 나는 당신의 자녀이고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 작은 말 한마디가 이 세상 모든 뛰어난 웅변가들의 말보다 뛰어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신학자들의 대단한 이론들이 있고 뛰어난 설교자들의 감동적인 묘사와 외침이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서 진심으로 나오는 이 한마디 말이 그 어떤 것보다 낫습니다. 아빠,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친밀함을 누리는 특혜는 성령님의 계속되는 사역입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님이 증언하신다는 표현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언하신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하시며 그 친밀함으로 나아가 친밀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정말 좋은 사람은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정말 좋은 사람은 가까이 할수록 배우게 되고 닮아가게 됩니다. 정말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친밀함은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과 그분과 함께 하는 교제의 깊이에 따라 그분과의 친밀함은 달라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더 알아 가시고 더 가까워지시고 더 닮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서먹한 관계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달려갈 수 있습니다.
3. 상속함(17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는 특혜, 셋째는 ‘상속함’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특혜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미래에 온전히 누리게 될 특혜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현재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도함을 받으며 친밀함을 누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미래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게 될 ‘상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상속자로서 그 모든 특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 날에 그 모든 것을 그 모든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직접 보는 것들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지금이 아니라 그날에, 조금 후에 그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우리의 상속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파산의 위험이나 가치가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놀라운 상속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상속자가 되어서 상속함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8:1)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였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그 모든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 모든 특권과 축복, 그 완전한 실체는 이미 확정되었고 그날까지 보존되었다가 그날에 우리가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래의 영광에는 현재의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기에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그분을 따를 때 우리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은 영광에 이르는 길에는 언제나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그러했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가는 길도 그러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즐거워하라고 명령합니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날의 영광을 바라볼 때 지금의 고난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중에서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하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날에 더 기대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누리게 될 그 모든 영광의 실체보다 더 기다리게 되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그분입니다.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날에 누리게 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놀랍고 기대되고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날 그날이 기다려지지 않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로서 다 이해할 수 없는 특혜를 누립니다. 특혜가 이 정도였어? 감탄하게 되는 놀라운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을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친밀함을 가운데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그 모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누리는 특혜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긍지를 가지며 삽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이며 예수님의 피 값이 지불된 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 영광을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자,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러면 그런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격을 지키며 품위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끔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질 할 때가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교회를 섬기는 일꾼인데,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가 교회를 인도하는 직분을 맡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좀 더 잘 해야지 좀 더 참아야지 다르게 살아야하지 더 주님을 생각해야지 더 주님을 위해 살아야지! 그렇게 제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좀 다르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유혹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알고 계시고 주관하고 계시는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손 안에 있는데 다르게 반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자녀로서 하나님께 아빠라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특별한 은혜구나! 하나님이 주시는 특혜이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혜, 이 정도로 놀랍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