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PART I
본문 : 베드로전서 1:1-2
설교자 : 조정의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본문 말씀에 들어가기에 앞서 베드로전서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많은 신학자들보다 더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성경을 베드로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서는 1:1과 5:1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1: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5:1)”) 이는 자신이 쓴 편지임을 밝히고 있고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기록과 증거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라고 밝히고 있는데,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는 성도들(지금의 터키 북쪽과 서쪽지역)입니다. 지도를 통해 이 지역을 보면 동그랗게 순환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 용인, 대전, 부산, 서울로 이어지는 그림을 생각하면 됩니다. 편지가 본도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지역을 한 바퀴 돌아 비두니아로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쓴 것입니다.
이 소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대체로 노예와 자유민이 혼합되어 있었고, 인종적으로 이방인들이 많았습니다.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1:18),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1:14),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2:10). 이와 같은 표현은 일반적으로 ‘이방인’을 가리킬 때 쓰던 표현들입니다. 당시 에베소를 소아시아 전도 사역의 중심지로 삼았는데 이를 통해 세워진 교회들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행2:9-11에 등장하는 오순절 사건 때 성령이 강림하셔서 수천 명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있었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유대교에 들어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편지를 쓸 때는 받는 사람을 고려합니다. 베드로 역시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 지역 성도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부당함과 많은 핍박, 고통이 있었고 순교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5:9). 이뿐 아니라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4:12). 소아시아 성도들은 당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인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었고, 앞으로 믿음을 흔들만한 시험(불시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 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바로 거짓선생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2:1)” 당시 교회들은 밖으로 육체적, 경제적, 정치적인 고난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진리를 흔드는 거짓교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편지가 쓰인 시기는, 로마 화재 이후 네로 황제가 교회를 전격적으로 핍박하기 직전으로 봅니다(AD 60-64년). 또한 5:13을 볼 때(“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는 바벨론, 즉 로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바벨론은 당시 사용하던 로마의 비밀명칭).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 편지에 자주 나오는 단어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39), 고난(10), 구원(7), 소망(5), 택하심(5) 등의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당시 소아시아 성도들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 중에 하나님과 구원, 소망, 택하심을 기억하면서 기쁨을 가지라는 격려를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고 주님 안에 소망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서를 보면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비시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는 기록과 각 교회를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로마로 돌아와 그들을 기억하고 격려하기 위해 베드로전서를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은 1, 2절 말씀을 가지고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편지봉투 앞에 써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편지봉투의 왼쪽 위에는 보내는 사람을, 밑에는 받는 사람을 기록합니다. 아내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쓴다면 겉봉투에 아마도 ‘사랑하는 남편 정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김선미에게’라는 식으로 쓸 것입니다. 모든 서신서를 보면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짤막한 인사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딤전1:1-2,살전1:1,벧후1:1-2).
보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처럼 베드로 자신도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인간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 바요나’입니다. 시몬 바요나라는 말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찬송가 가사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헬라어에서 조금씩 변형된 것으로 요한을 요나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당시 시몬이라는 이름은 참 많았습니다. 성경에서도 구레네 사람 시몬, 나병환자 시몬, 예수님의 형제 시몬 등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결혼을 한 사람이었고(눅4:38-39, 고전 9:5) 그를 주님께로 인도했던 형제 안드레가 있었습니다(요1:41-42). 그의 고향은 벳세다라는 곳인데 ‘어부의 집’이라는 뜻으로 갈릴리 바다 북쪽으로 1.5킬로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은 주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등 많은 이적을 행하신 장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곳입니다.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마 11:21)
잘 알다시피 베드로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규모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부로서 일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마1:29, 눅4:38). 인간 시몬은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충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바다에서 뛰어내리고, 예수님의 영광에 감격하여 그곳에 초막을 짓겠다고 했으며,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는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자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몬이 ‘베드로’가 된 사건은 그가 처음 예수님께 나왔을 때입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아람어로는 ‘게바’, 헬라어로는 ‘베드로’, 바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성경에서 사도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첫 번째로 기록되었고, 예수님 다음으로 자주 언급된 사람이며, 오순절에 많은 이들 앞에서 설교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의 첫 열매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고 사도 바울이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충동적이었던 인간 시몬은 장차 베드로가 되리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와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사도는 ‘어떤 사람에 의하여 보냄을 받은 사람’, ‘보낸 사람의 권위를 가지고 정식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택하심과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시고 어떻게 그를 부르셨을까요?
‘예수’라는 이름도 역시 당시에는 참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이고 의미는 ‘여호와의 구원’,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당시에도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자주 사용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그 이름의 뜻이 같았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
‘그리스도’는 ‘메시아’,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안드레도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고 말했고,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실 줄 아노니…”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내가 곧 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과 동행하고 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어떻게 부르셨을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 한 번에 따랐다고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첫 부르심은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입니다(요1:42). 두 번째는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르는 장면입니다.(마4:21)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눅5장입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5:3).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주님은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물에 띄우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미 밤새 수고하여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자신의 고향에서 수없이 고기를 잡아본 어부 베드로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곳에서, 목수의 아들 예수가 그물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고 수많은 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인간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라고 고백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그가 본격적으로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9-10절).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험한 바다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잔잔해지는 것,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게 되며, 물 위를 땅을 걷듯이 걸아가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썩어 냄새가 나는 죽은 사람이 살아 나오는 역사를 보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하신 모습을 변화산에서 직접 목격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자라” (벧후1:16).
그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귀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산상수훈을 듣고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떠나겠느냐” 물으셨을 때 그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는 칭찬을 듣게 됩니다(마16:13-20). 그러나 곧 21-23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자, 주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날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는 생각을 넣어준 위기의 순간이었다면 다음은 그의 믿음을 뒤흔들어 실패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마지막 만찬 때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다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1-35)라고 말합니다. 그의 분명한 말에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1,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믿음을 뒤흔들만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을 알고 계셨고, 그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기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결국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저주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합니다. 눅22장에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부인하고 닭이 울었을 때 주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눅 22:54-62).
그 일 이후에 베드로는 다시 배와 그물로 돌아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21장의 장면이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베드로가 왜 자신이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하는지, 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는지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2) 그는 다시 배와 그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5-6).
7절에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그 자리에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약 백 미터의 거리를 다른 제자들은 배를 타고 오고 베드로는 헤엄을 쳐서 온 것입니다(8절). 그는 예수님을 빨리 뵙고 싶었던 것입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그곳에 숯불에 생선도 있고 떡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밤새 수고한 베드로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음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식사 후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 모두가 주를 떠날 지라도 나는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 시몬에게 주님께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인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신 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가 연약하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주님의 양을 맡기셨고(“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사도와 제자와 교회의 반석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자, 보내심을 받은 자 베드로”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이제 배와 그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초대 교회 시대의 유명한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보면,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비시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에서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로마에 갔을 때 거기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 베드로 자신이 그렇게 고통 받기를 요구했다(교회사, III, I)’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시는 배와 그물로, 인간 시몬 바요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택하신 그리스도의 부름을 기억하고 자신의 목숨을 다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로 살았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그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그를 택하여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도 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실에 감사하시고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