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는 비결
본문: 시편 103편
설교자: 조정의
미국에 코로나 19사태가 매우 심각해져 처음으로 교회의 대면 집회가 금지됐을 때,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첫 영상설교로 선택한 본문이 시편 103편이었다(고후 5, 우리가 담대히 바라는 바)
겪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시 43:5) 등의 탄식이 나올 법 한데, 정작 시편 103편엔 겪고 있는 환경에 대한 탄식이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시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시작해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끝이 난다(1, 22절).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긍휼, 인자하심, 은혜를 노래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 왜 이 시편을 무서운 전염병의 공포로 떨고 있는 성도들에게 선포했을까? 그것은 이 시편에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는 비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시편 103편을 통해 우리의 그 비결을 배워보려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든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지, 우리의 탄식이 찬송으로 바뀔 수 있기를, 여호와를 송축하기 원한다
1. 송축: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는 비결(1-2절)
탄식을 찬송으로 바꾸는 비결은 시선을 환경에서 하나님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이 내 삶에 베푸신 은택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여러 번 명령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특별히 1절을 보면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라고 말했다.
단지 머리로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지’라고 생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님과 그분이 베푸신 일에 대한 합당한 감정으로 채우는 것(기쁨, 감사),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내 전부를 집중시키고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며 합당한 찬양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송축이다. 이 시간 당신의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은혜를 당신에게 베푸셨는지 온통 집중하여 기억해보라. 온 힘을 다해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송축하는 법: 1)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6-9절)
다윗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나? 그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신 하나님의 행사를 기억했다(6-9절).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셨다(6절). 모세를 통해 억압 당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애굽을 놀랍게 심판하셨다. 여호와의 공의를 나타내셨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셨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셨다(8-9절). 애굽에서 약속의 땅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 원망과 반역이 얼마나 심각했나? 그에 반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인자하심은 참으로 풍부했다.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고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셨다(신 1:31).
3. 송축하는 법: 2) 내 삶에 베푸신 은택을 기억하며(3-5절)
이처럼 다윗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택을 말씀을 통해 보고 하나님을 송축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어떤 은택을 베푸셨는지 기억한다(3-5절). 다윗과 함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해보자.
-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다(3절)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를 지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사하셨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참 많은 죄를 저질렀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므로 죄를 있는 그대로 심판하셨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죄악을 사하셨고, 모래처럼 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은택을 내려주셨다.
-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병을 고치셨다(3절)
다윗은 수많은 세월 질병에서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했다. 당신의 지난 삶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병에 들었었는가? 또 얼마나 많이 고침을 받았는가?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건강을 지키는 건 기적이다(은혜). 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경험했는가?
- 하나님은 다윗을 생명의 파멸에서 속량하셨다(4절)
다윗은 지난 삶 속에서 여러 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다. 죽음의 위기(사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극적으로 그를 구출하셨다. 당신은 어떤가? 하나님은 당신을 여러 죽음의 위기에서 건지시지 않았는가?
-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다(4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인자와 긍휼을 머리에 씌운 아름다운 관처럼 묘사하며 찬양했다. 목동이었던 다윗에게 왕관을 씌워주신 은혜, 많은 아내와 자녀를 주신 은혜, 평화로운 나라를 주신 은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신 은혜(성전). 우리 또한 그러하다. 삶을 되돌아보면 복음성가 가사처럼,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하나 없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다윗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다(5절)
하나님은 다윗이 소원하는 것, 좋은 것을 주심으로 다윗을 만족하게 하셨다.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삶의 참된 만족을 여러 방법과 경로를 통해 얻게 하셨다. 당신의 삶을 돌이켜보라. 하나님이 당신의 소원을 좋은 것으로 만족시켜주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하나님 안에서 만족스럽고 감격했었는가?
참된 그리스도인은 삶을 돌이켜봤을 때 대체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택, 그분이 베푸신 복을 세어 볼 때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때로 우리는 진짜 심각한 환경을 만난다. 사랑하는 가족이 치유되기 힘든 질병에 걸리고, 오랜 병원 생활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먼저 떠나보낼 때도 있다.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 사망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자녀가 오랜 세월 방황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두운 터널을 너무 오래 지나고 있는 것 같은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어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의 사연을 들어보면 문제가 여러 겹 쌓여 솟아날 구멍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도 진심으로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을까?
4. 어려운 환경 속에 송축하는 법: 큰 어려움보다 더 큰 은혜를 기억하라(10-18절)
10-18절은 다윗이 특별히 언약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은택을 베푸시는지 심도 있게 기억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아무리 우리가 고통 중에 있어서 송축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첫째, 우리는 단지 먼지뿐인 인생을 산다.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체질은 연약하다. 가볍고 불면 그냥 날라가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다. 아무리 대단한 삶,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도 풀이나 들의 꽃처럼 금방 시들어버리는 허무한 인생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고 있던 자리도 알지 못하는 그런 대단한 가치가 없는 인생이다.
우리는 마치 세상의 주인이 우리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내 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 특히 고통의 문제를 겪을 때, 불평과 원망을 품는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알몸으로 태어나 알몸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하나님이 주신대로 받고 취하시면 도로 빼앗아 올 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내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는 은택은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 주신 것은 감사한 것이지만, 주지 않으셨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원망할 권리가 없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분은 우리에게 한 호흡도 제공하실 의무가 없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분으로서 다스리실 권리가 있으시다. 찬양받을 권리가 있으시다. 하지만 죄인인 우리는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찬양을 드리지 않고 요구하며 공정함을 따지고 든다.
성경에 가장 많은 재앙을 그것도 가장 짧은 시간에 연거푸 받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욥일 것이다. 그는 보고자들이 와서 자식이 죽고, 재산이 약탈되었다는 소식을 순차적으로 전했을 때, 숨 쉴 틈 없이 문제가 삶 속에 밀려들어 왔을 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백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송축)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진정 어떤 자인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지 그분께 찬송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두 번째 측면과 연결되는데, 하나님을 거역한 먼지 같은 인생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놀랍고 크신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우리에게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크신 인자하심을 보여주셨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긍휼히 여기셨다(10-13, 17절). 먼지와 풀 같은, 들의 꽃 같은 금방 사라질 인생에게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셨다.
어떻게 죄가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이 죄악투성이 인생인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는가? 공의로우신 그분이 어떻게 우리 죄악에 따라 그대로 갚지 않으실 수 있는가?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최고의 사랑, 최고의 은택,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죄과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옮기시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 가까이 보내주셨다. 성자 하나님은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크신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시기 위해 하늘에서 땅까지 내려오셨다. 우리 죄악을 그대로 갚으시려면 우리를 가차 없이 심판하셔야 했지만, 그 죗값을 아들에게 대신 지우시고 우리에겐 하나님의 의로움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도록 입혀 주셨다.
이 땅에서 아무리 심각하고 비참한 환경 가운데 처해도 우리가 모든 일에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을 뛰어넘는 은혜를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가장 최악의 자리를 대신 취하셨기 때문이다.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막막하고 우울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라.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였음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말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억하라. 그리고 송축하라.
하나님과 그분의 은택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는 비결이다. 정기적으로 그분을 기억하라. 그분이 베푸신 복을 적어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라. 자기 영혼에게 명령하라. 특히 코로나 19로 그분을 기억하는 공동체의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 각자가 그 일에 힘써야 한다. 영적 치매 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험이 빠뜨리는 질병은 없다.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찬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