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천국의 예배 Part1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을 감상할 때, 몇 번의 붓 터치가 있었는지, 별이 몇 개인지 세어가는 방식으로 감상하지 않는다. 그런 디테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명화는 디테일의 의미를 하나하나 찾다가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화가도 그런 의미를 두고 그린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이미지, 풍기는 인상,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감상해야 한다.
앞으로 살펴볼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명화와 같다. 수많은 추상적 이미지가 등장하는데(벽옥, 홍보석, 녹보석, 나팔, 대접, 짐승), 하나하나 그 의미를 찾다가는 계시의 본래 의미를 놓치기 쉽다. 엉뚱한 교리나 이단적 사상까지 만들어 낸다(신천지).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오류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 주셔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알리신 계시이다(1:1). 위엄 찬란한 왕과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모든 세대 교회를 대표하는 아시아 일곱 교회를 칭찬, 책망, 권면,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교회가 맞이할 미래를 말씀해 주신다. 말세의 교회인 우리가 주님의 계시를 제대로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위로와 격려, 소망과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최종적, 영구적 회복에 이르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 교회는 알아야 한다. 첫 번째로 천국의 예배를 살펴보자(4-5장).
1. 예배의 시점 천국의 예배는 언제 드리는가?
요한은 다시 음성을 들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4:1).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요한이 들은 음성은 누구의 음성인가?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4:1). 계시록 1장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요한을 불러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라’고 하신 분(1:10-1), ‘전에 죽었었으나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신(1:18), 주님이시다.
주님이 요한에게 보이겠다고 하신 것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다.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할 때 미래에 해당하는 일이다. 주님은 처음부터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는데(1:19), 1-3장이 요한이 본 예수님의 위엄 찬란한 모습과 지금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있는 일이었다면, 이제 4장부터 22장까지는 장차 될 일에 관한 계시이다.
‘언제’에 관한 가장 중요한 질문: 우리에게도 장차 될 일인가?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인가? 성경 해석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첫째, 천국은 시간을 초월한 곳이다. 둘째, 천국의 예배는 밤낮 쉬지 않고 이어진다(4:8, “장차 오실 이시라”).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과 아시아 일곱 교회는 현재 이 천국의 예배에 동참하고 있는 상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교회는 천국의 예배를 미래에 드릴 것으로 소망하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천국의 예배는 마땅히 일어날 일이다. 당신은 이 예배를 소망하고 있는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2. 예배의 장소 천국의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는가?
계시록 4장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하늘”이다(4:1, “이리로 올라오라”).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4:2)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광경을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보았다(4:1).
성경은 하늘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1) 첫째 하늘: 대기권(마 6:26), 2) 둘째 하늘: 우주(창 1:15), 3) 셋째 하늘: 하나님, 천사 등 영적 존재가 있는 곳(고후 12:2: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 바울). 요한이 올라간 하늘도 셋째 하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늘에 있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4:2).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셋째 하늘 곧 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배, 천국의 예배다.
요한은 천국을 마치 성전처럼 묘사했다(5-6절).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가 있던 것처럼, 천국에 하나님이 좌정하신 보좌가 있다.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연기와 불꽃과 음성이 있었던 것처럼, 천국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났다(5절). 성소에 일곱 촛대와 등불이 있었던 것처럼, 천국 성소에 켠 등불 일곱이 있다(5절). 요한은 이를 일곱 영, 충만한 영광의 성령이라고 말했다. 성소에 놋으로 만든 물두멍이 있어 제사장이 수족을 씻어 자신을 거룩하게 했던 것처럼(놋바다, 왕상 7:23), 천국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4:6).
이곳이 바로 성도가 영원히 예배하게 될 천국이다. 매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천국의 예배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장소와 상관없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다(요 4:23). 당신은 천국의 예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사모하는가?
3. 예배의 대상 천국의 예배는 누구를 높이는가?
예배의 대상 곧 요한이 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누구신가?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4:3). 마치 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분의 모양을 또렷이 볼 수 없었다. 다만 그분에게서 나오는 찬란한 영광을 봤다.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가장 빛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모양을 생각해야 한다. 벽옥은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맑고 투명하게 여러 빛깔로 굴절, 분산할 수 있다. 홍보석은 매우 붉은 색이며, 사방 광채를 표현한 무지개는 녹색빛이 강렬한 녹보석과 같았다(겔 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어떤 사람은 각각의 보석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공의로우심(심판), 자비와 긍휼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같더라’라는 말은 지나친 추측을 억제한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타난 영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무한하고 영광스러운 속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거룩하심, 전능하심, 공의로우심, 자비, 사랑, 긍휼.
보좌에 앉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10-11절을 보라.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 그 보좌에 누구도 앉지 못한다. 예배의 좌석만 봐도 알 수 있다. 보좌를 중심으로 네 생물이 사방을 둘러 있고, 그 밖으로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 있는 보좌에 각각 앉아 있다. 천국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 예배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당신이 드리는 예배와 예배의 삶의 중심에는 누가 앉아 계시는가?
4. 예배의 주체 천국의 예배를 누가 드리는가?
그러면 예배의 주체인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은 누구인가?
예배자들인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은 계시록에 계속 등장한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관한 견해는 너무 많다. 결론만 말하면 네 생물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예배드리는 높은 계급의 천사들(스랍, 그룹), 이십사 장로들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계시록에 사용된 거의 모든 추상적 이미지를 구약 성경에서 차용하는데(다니엘 7장, 에스겔 1장, 이사야 6장, 스가랴 4장), 예배자들의 모습도 구약에서 발견할 수 있다.
① 네 생물
네 생물은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있었다(4:6).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날아가는 독수리 같이 생겼는데,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여섯 날개 그것도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한 날개를 가졌다는 것이다(4:8). 날개뿐만 아니라 몸에도 앞뒤에 눈들이 가득했다(4:6). 에스겔도 비슷한 환상을 봤는데(겔 1:4-25),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모습이었다(초자연적).
초대 교부들은 네 생물이 사복음서를 상징한다고 말했고, 십이궁도에서 네 방위를 가리킨다고 본 사람도 있었다. 사자는 힘, 송아지는 섬기는 능력, 사람은 지력, 독수리는 민첩함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의 이미지를 종합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민첩하고 신속하게 하나님 뜻을 수행할 수 있고(여섯 날개), 많은 지혜와 지식으로(가득한 눈)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높은 반열의 천사들이라는 것이다(겔 10:15). 이들은 천사를 대표하고, 나머지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말한 천사들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서 있다(계 5:11).
② 이십사 장로들
상대적으로 이십사 장로들은 ‘초자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다(4:4). 성경은 어디에서도 천사를 가리켜 ‘장로’라고 말한 적이 없다. 흰옷은 계시록에서 이기는 교회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예배 의복이다(3:5, 18, 마 22:11-12). 금관은 천사에게 약속된 적이 없다. 오히려 승리한 성도에게 약속되었다(2:10, 고전 9:25; 딤후 4:8; 약 1:12, “의의 면류관”, “생명의 관”). 장로들은 보좌에 앉아있다(다스림). 하나님은 천사가 아니라 성도에게 함께 다스릴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2:26-27, 3:21, 5:10; 마 19:28; 눅 22:30; 고전 6:2-3; 딤후 2:12).
왜 24명인가? 구약 성도의 대표(12지파)와 신약 성도의 대표(12사도)인가? 그럼 요한의 자리는 공석인가? 이 또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님께서 이렇게 답하실 것이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 이들은 거룩함을 입은 성도의 대표로서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 전념한다.
5. 예배의 제목 천국의 예배는 무엇을 기리는가?
마지막으로 예배자들의 찬송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어떤 내용으로 높여드렸는지 살펴보자. 먼저, 네 생물이 드렸던 찬송이다.
8절…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이어서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며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면서(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던 찬송이다(4:10).
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이들의 예배를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의 속성을 높여드린다: 거룩하심(강조, 삼위일체께 드리는 예배), 전능하심, 영원하심. 성도들도 한목소리로 하나님의 속성을 높이면서 “영광, 존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찬양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만물이 주님 뜻대로 주님을 위하여 지음받았다. 하나님을 부정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국에서 울리는 예배의 제목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예배한다”이다.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예배사로 정리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사와 사람과 만물을 예배받기 위해 창조하셨다. 하지만 높은 계급의 천사 중 하나가 그 예배를 거부했다(루시퍼). 사람도 사탄의 편을 택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예배하는 범죄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택하여 예배자의 나라,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셨고 그 가운데 성전을 두고 임재하여 예배를 받으셨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예배하여 멸망하게 되었다. 백성을 참된 예배로 인도할 왕, 제사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거룩한 제사장이며 위엄 찬란한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들의 딱딱한 마음은 성령으로 부드러워졌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려는 반항심도 성령께서 새롭게 하셨다. 그들은 이제 우상이 아닌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 거룩한 예배자들이 되어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천국의 예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창조와 새창조(구원)의 목적에 합당한 삶, 예배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천국의 예배를 맛본다.
하나님은 영원히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스윈돌 목사는 예배를 ‘가치를 바른 대상에게 귀속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가치, 존귀, 헌신, 관심, 주의, 애정, 흠모를 온전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말했다.
모든 종교가 약속하는 미래의 천국은 지극히 우상 숭배적이다. 대표적으로 마호메트의 언행록에 따르면 천국에서 무슬림은 진주, 옥, 루비, 보석으로 장식된 집에서 72명의 여인(남편)과 8만 명의 하인을 거느리며 영원히 잘 먹고 잘살게 된다. 예배를 받는 대상은 신이 아니라 자신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약속하고 소망하는 천국은 지극히 예배 중심적이다. 벽옥, 홍보석, 남보석은 우리가 살 집이 아니라 하나님 보좌에서 빛나는 영광이다. 수많은 천사들과 성도가 함께 밤낮 쉬지 않고 집중하게 될 일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예배다. 모든 가치, 존귀, 헌신, 관심, 주의, 애정, 흠모는 자신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집중된다. 천국의 예배가 성도가 영원히 헌신하게 될 일이고, 성도에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질문하라: 지금 당신에게 예배가 중심이 아니라면, 영원히 예배드릴 천국을 사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가 vs. 우상을(가족, 재물, 자신) 예배할 것인가? 매일 치르는 전쟁에서 천국의 예배가 당신의 시선을 하늘로 돌리게 하기를, 창조와 새창조의 목적을 깨닫게 하기를,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갈망하게 하기를 간구한다. 교회는 존재한다. 고로 예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