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진정한 강함은 어디서 오는가?

본문: 에베소서 6장 10-20절

설교자: 이병권

“진정한 강함은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다섯 단계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에서 강함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지금의 마지막 권면이 있기까지 에베소서는 전반부에 교리적인 설명이 있었고 후반부에는 실천적인 적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권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전쟁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 전쟁 중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내가 에베소서 전반부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그래서 내가 에베소서 후반부에서 말하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산다면 나는 지금 전쟁을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전쟁을 절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산다면, 겸손으로 하나 됨을 지켜간다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입는다면, 사랑을 행하며 빛을 비추는 삶을 산다면, 어리석음과 방탕과 술 취함을 버리고 지혜로 행하고 성령 충만으로 산다면,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를 섬기는 자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분명히 반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렇게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의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더 거칠어지고 더 힘겨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온갖 종류의 공격들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들어선 것입니다. 비록 적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총성이나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우리는 날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전쟁을 경험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진지하게 나는 지금 이러한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지금도 전쟁 중에 있는지, 싸우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죄와의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까? 때로는 넘어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쓰라린 패배에 가슴 아파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를 살펴봤을 때 죄와 싸우는 일이 없어 그저 평화롭다면, 마음에 생기는 갈등이나 주님을 향한 부담이 없다면 그런 경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전쟁 중인 군사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둘 중에 하나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쟁 중에 싸우기를 포기한 사람일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우지 않는 군사는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이 싸우는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예외 없이 모두 주님의 군사입니다. 주님의 군사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싸우는 일입니다. 전쟁 중임을 알고 적과 싸우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러한 싸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찾고 있는 답, ‘강함’일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는 강함, 적의 모든 공격을 무력하게 만들고 싸움에서 능히 이기게 하는 강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기 원합니다. 강함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바울이 직접적으로 명령합니다. 1단계 입니다.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우리 성경은 “강건하여지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이 명령입니다. 강하라는 명령이 수동태로 되어 있어서 강하게 되는 것이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같은 명령을 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딤후2:1) 강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명령하는 강함이 어디서 오는지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먼저 말하고 추가 설명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강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주 안에 있기에 그 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장에서 에베소 성도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의 힘의 위력”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1:19)을 알게 하시기를 구했습니다. 그 힘의 능력, 지극히 크신 능력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지극히 큰 이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며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가 이 능력으로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강할 수 있습니까? 강함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 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단계에 올라왔습니다.

다음으로 2단계에서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강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강하라는 명령을 알고 강함이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도 압니다. 주님 안에서 강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가 강하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반복되는 명령에서 강함에 대한 조금 더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1),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13) 바울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로마병사의 전신 갑주를 빗대어 설명하는데 강하라는 명령이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명령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면 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의 강함이 되게 하는 방법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능력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 삶에 역사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강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강함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할 때 가능합니다.

전신 갑주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무기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전쟁 중에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입으면 됩니다. 취하면 됩니다. 손을 내밀어 붙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면 굳건하게 설 수 있습니다. 어떤 공격에도 어떤 계략에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설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강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강할 수 있습니까? 강함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 순종할 때 옵니다. 순종으로 우리가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강함으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3단계에서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누구입니까?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은 우리의 싸움의 상대를 말하면서 싸움을 씨름에 비유합니다. 한국적인 번역으로 씨름이라고 했는데 레슬링을 말하는 것입니다. 씨름, 레슬링이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직접 몸을 부딪치며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몸으로 부딪치는 싸움을 말하면서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싸움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싸움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쉼 없이 부딪치며 온 힘을 다해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싸움을 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강함으로 싸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와 그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 간단하게 악한 영들이 우리의 대적이며 우리가 싸워야하는 대상입니다.

만약, 우리가 눈에 보이는 상대와 싸운다면 잘못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강함은 사람과 싸우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강함은 올바른 상대를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강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설픈 강함은 진짜 적에게는 패배하면서 대신에 싸우지 말아야 하는 상대에게는 싸워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처음에는 내가 맞다고,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많아집니다. 상대를 설득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다면서 상대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힘으로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화를 내며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은 그냥 내버려 두고 눈에 보이는 상대와 싸울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싸워서 좋은 결과가 있습니까? 조금의 유익도 없습니다. 서로를 다치게 할 뿐입니다. 혹 이긴다 하더라도 사실 이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은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길 때 많은 경우에 더 성숙한 사람은 지고 더 육신적인 사람이 이깁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다른 사람과 잘 다투는 편입니까? 다툼이 있을 때 나는 주로 이기는 편인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다툼이 자주 있을 뿐만 아니라 다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이긴다면 나에게는 강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날 교회가 부실하게 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마귀를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 잊어버린다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고 당연히 이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악하고 교활하며 강합니다. 우리를 속이고 죄로 유혹합니다.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계하고 공격에 맞서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자원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한 적입니다. 하지만 겁을 먹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의 강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강함으로 능히 싸울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4단계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여섯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로마병사의 겉옷은 길고 느슨했기에 띠로 묶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 민첩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진리가 허리띠가 되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자로서 진리를 따라 행할 수 있으며 진리로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강함은 진리를 알고 진리를 따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의 호심경입니다. 호심경은 목에서부터 허벅지까지 가려주는 갑옷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의 중요한 기관들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라는 호심경을 입은 자들입니다. 마귀의 어떤 예리한 공격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롭게 된 자로서 의를 행하며 모든 악을 버리고 의를 좇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가 우리의 강함이며 선을 행하는 동기와 힘이 됩니다.

셋째는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안은 사람들과의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를 통해 복음으로 말미암은 평안이 이웃에게 증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을 평안을 바라는 세상 가운데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로마병사의 방패는 길이가 1.4미터 정도 되는 직사각형 또는 타원형의 긴 방패를 말합니다. 믿음이 이러한 방패가 되어 적의 공격을 막아줍니다. 특별히 언급되어 있는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합니다. 악한 자의 불화살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퍼부어질 수 있지만, 믿음의 방패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의 공격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시기에 그 그늘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다섯째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구원받은 자로서 현재의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 온전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은 구원의 소망의 투구라고 말합니다(살전5:8) 구원의 투구를 소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에 머지않아 누리게 될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며 소망하게 합니다. 미래를 소망하는 자는 현재를 이깁니다. 진정으로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싸울 수 있는 무기,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본보기를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는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고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을 때, 전신 갑주를 입은 자로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강함을 경험할 수 있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 5단계, 우리가 진정한 강함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할 때 생각할 요소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기도입니다.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 나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약함을 알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을 아는 자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강함으로 나의 약함을 채우는 것, 기도가 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나의 약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있고 나를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함이 어떠한지 그 강력한 능력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강함은 자신의 약함을 아는 것에서 옵니다. 나의 약함을 알면 알수록 오히려 우리는 강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집요하고 간교합니다. 우리의 약점을 알고 약점을 노립니다. 우리에게 맞춤형으로 효과적인 계략을 세우고 간계를 꾸밉니다. 마귀가 우리와의 싸움을 전략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공격에 대비해서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특별히 18절 말씀을 보면 “모든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첫 번째, “모든 기도와 간구라고 말씀합니다. 기도의 종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든지 어떤 형태든지 관계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 간구의 기도, 자백의 기도, 중보의 기도, 찬양의 기도, 어떤 방법으로든 다양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기도할 수 있고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항상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 항상 힘쓰며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인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지 알 수 없고 나 혼자 마음 조리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인내가 필요합니다. 끈질기게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한 것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네 번째, 여러 성도를 위하여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성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대상을 조금 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는 기도는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만 기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를 함께 부르심을 받았고 함께 주를 섬기며 한 몸 된 교회로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추가로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다섯 번째,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그분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분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할 때 깨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진정한 강함을 얻을 수 없고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기도를 요청했습니다(19-20). 바울도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하는 기도의 열정이 더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넓이가 더 확장되고 기도의 능력이 성령님으로 인해 더욱 강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능력이 나의 약함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님의 강함으로 열매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1단계, 강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2단계, 순종은 하나님의 강함이 나의 강함이 되게 합니다. 3단계,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울 때 강함은 진정한 강함이 됩니다. 4단계, 하나님의 강함은 전신 갑주를 통해 우리에게 적용이 됩니다. 5단계, 기도로 나의 약함을 하나님의 강함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 있는 우리에게 두 가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전쟁의 최종 결과는 이미 ‘승리’로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전투가 어떠하든 상황이 어떠하든지 나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최후 승리가 확정되어 있고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승리자가 되어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낙심 될 때도 있지만 힘을 내십시오. 우리의 승리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기쁜 소식은 ‘함께’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든 명령은 2인칭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의 대상이 모두 너희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 각 개인이 이 명령에 순종하지만 개인만을 위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신 갑주를 말하면서 ‘서라’(14)는 명령을 했습니다.

전신 갑주를 입은 군사들일 줄을 맞추어 함께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성도들이 각자의 위치에 굳게 서서 적의 공격을 함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적의 어떤 공격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서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함께 할 때 우리의 강함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의 강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혹시 전투 없는 승리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전쟁에서 싸우기를 포기하고 적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승리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은 아닙니까?

승리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이기기 위해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패배에 익숙해지지 말고 승리하기 위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강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강함으로 마귀와 악한 영들과 싸우시기 바랍니다. 싸우지 않으면 능력도 강함도 승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강함으로 함께 싸우는 주님의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