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중요한 것부터 먼저
본문: 디모데전서 2장 1-8절
설교자 : 이병권
이따금씩 보면 집안에서 무언가를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처럼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들은 여러 가지 실수를 합니다. 열심히 조립을 했는데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을 때도 있고, 어찌어찌 완성했는데 들어가야 할 부품이 남아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립했던 것을 다 풀고 또 다시 했던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순서를 몰라서 나중에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했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지켜야 하는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없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청소 만해도 그렇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걸레질을 하기 전에 빗자루로 먼저 쓸어야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순서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시간에 따라 순서를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함에 따라 순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중요하고 더 급한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을 제쳐두고 덜 중요하고 급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고 그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덜 중요한 일 때문에 더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일도 그러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도 그러합니다. 사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다양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사역했던 디모데의 경우에는 목회라고 말할 수 있고 우리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하면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하는데, 주님을 섬기는데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어떤 일은 중요하고 어떤 일은 중요하지 않고 이런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에 많은 일들을 실제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일을 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에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구제하는 일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때 사도들이 올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3-4)
사도들이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처리했던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디모데에게 그러한 우선순위에 따라 목회사역을 감당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권면은 단순히 디모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향한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우선순위를 바르게 가지고 수고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이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일깨우며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올바른 순서를 따를 수 있도록 교훈합니다.
그러면 그 교훈이 무엇인지 세 가지 질문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무엇이 우선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생각하며 선배 목회자로서 본격적인 조언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두 사람, 믿음에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출교한 이유를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디모데가 따라야 하는 지침을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서 첫째로 강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1)
무엇이 우선입니까? 기도가 우선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야! 나는 너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기를 권한다.’
디모데가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기도가 중요한지 잘 몰랐을까요? 디모데는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에 따라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며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기도의 중요함을 이렇게나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것을 자주 놓칩니다. 중요하지만 우리가 잘 잊어버립니다. 주님을 위해 수고한다고 하지만 기도 없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기도가 빠지면, 기도하지 않고 뭔가를 시작하고 수고하다보면 그 일의 초점이 점점 나에게 맞춰지게 됩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의지하기보다 내 힘이 앞서기도 하고 때로는 내 욕심이 앞서게 되고 그래서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쉽게 불평하며 분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좋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빠뜨리면 안 됩니다.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예방 주사일 뿐만 아니라 치료약이 됩니다.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혹 그런 문제가 생기더라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도가 그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자신을 보면 말씀을 준비하거나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기도를 잊어버릴 때도 있고 기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제 자신을 돌이켜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다시금 기도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기도하면서 자신을 점검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섬기고 수고합니다. 그 모든 일은 주님을 위한 일이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일을 주님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려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기도입니다.
바울이 기도를 첫째로 권하면서 기도의 네 가지 종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구는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이고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도고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는 중보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기도의 여러 형태들을 언급하는 목적은 각각의 기도의 특징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기도를 누구를 위해 하느냐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대상이 누구입니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2)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입니다. 기도의 대상으로 반복해서 “모든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은 기도의 대상으로 아무런 제한이 없는 “모든 사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2절은 더 구체적인 기도의 대상으로 “모든 사람”을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도제목만으로도 충분한데, 모든 사람이라니!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도의 대상이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우리의 기도가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특별한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니까 정말 많은 음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음식을 다 주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은 식당에서 준비한 재료가 없어서 주문이 불가하고, 어떤 음식은 계절에 맞지 않아서 주문이 불가하다. 그런 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음식이 주문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할 수 없는 제한된 대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다 주문해서 먹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우리에게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의 대상이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차별 없이 사람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관련된 몇몇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해 그 마음을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어서 기도하기가 쉽습니다. 대개 우리는 나를 중심에 두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책임과 염려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다양한 문제들을 두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의 배우자, 나의 자녀나 부모님, 나의 가족들, 자주 보는 친구들, 내 마음에 있는 사람들, 나와 가까운 분들, 보통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은 그 중심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기도의 대상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대상에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디모데 당시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 당시에 바울의 이 말씀이 얼마나 어려웠을 지를 말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로마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로마의 대화재를 그리스도인들이 한 일로 돌리고 엄청난 박해와 폭정을 행했던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심지어 폭정을 일삼고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했던 자들까지,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2)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결국 우리가 평화롭게 살면서 경건함과 거룩함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평화롭게 주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입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 중에 하나가 전쟁이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 이런 거라면 좀 이상하다고, 이런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저와 성경공부를 했던 분이 우리 기도제목에 나라를 위한 기도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평안을 지켜달라는 기도에 대해서 고난이 있더라도 그 가운데서 주님을 신실히 따르기를 구하는 기도가 맞지 평안을 지켜달라는 기도는 아닌 거 같다며 어려워했었습니다.
평안한 생활을 구하는 것, 좀 이기적이고 내 욕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십니까? 이런 기도는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도일까요?
우리가 평안한 생활을 구하는 것이 단순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목적이라면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에 있어서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라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평안한 생활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안한 생활을 구하는 이유가 복음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근거를 세 가지로 언급합니다.
첫째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3-4)
우리가 평안한 생활을 위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평안함은 개인적인 안락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안함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고 궁극적으로는 복음 전파를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둘째 근거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5-6)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른 중보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근거는 “사도 바울, 자신”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7)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바울에게 맡겨진 사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을 위해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족, 친족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스승이 되어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을 위한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러한 근거를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 산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북한에 살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면 어떨까요? 비밀경찰이 언제든 우리 중에 누군가를 잡아갈 수 있고 붙잡힌 사람은 처참하게 고문당하거나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나라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입니다. 올바른 질서가 유지될 때,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로울 때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방해받지 않고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악해져가고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에서 멀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을 보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욕하고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인내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라를 다스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래서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모든 사람이 주님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하며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는 무엇이 그 중심에 있습니까?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아니면 “나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단지 우리 가족에게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단지 유평교회에만 속해계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가 교제하는 교회에서만 역사하시고 한국에만 역사하고 계신 분이십니까? 아니면 정말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온 세계를 다스리시며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을 사랑하시며 그 모든 것 위에 높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너무 작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계 각 나라에 속한 일들, 모든 것을 위해 다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복음이 없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8)
이 말씀을 우리에게 맞게 표현하면 거룩한 삶으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기도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으로 채우게 합니다. 기도는 주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사랑하게 합니다. 기도는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며 헌신하게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는 성공보다 기도 있는 실패가 더 유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