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본문 : 시편 74편
설교자 : 최종혁
수 7:7–9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여리고성에서의 놀라운 승리를 맛본 후, 아이성에서의 패배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자신만만했던 백성들은 두려움에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 아마 40여년 전 그들의 부모들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황스럽기는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다. 40년 전 모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을 때, 유일하게 갈렙과 함께 “그 땅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소리쳤던 사람이 여호수아였다. 그도 가나안의 병력을 보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보호자인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었다(민 14:9). 그들을 애굽에서 구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면, 적군은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것이 여호수아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첫 요새였던 여리고성을 함락시켰다. 그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기위해 그가 했던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백성들을 데리고 성을 빙글빙글 돈 것 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경험하였던 것이다.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성을 치러갔던 병력이 패배하여 돌아왔다. 여호수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고 그들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있는데, 왜 패배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수 7:9)
모세도 금송아지 사건 후에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전멸시키겠다고 하셨을 때, 이와 같은 취지로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그 많은 이적으로 이 백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오셨는데, 이제 와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논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었다. 다윗의 시편에도 종종 비슷한 맥락의 기도들이 있다.
이런 기도가 어떤 면에서 보면 좀 당돌한 것 같기도 하고 더 나쁘게 말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하나님이 이용 당할 분은 아니시다. 또한 이런 기도를 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면 그런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런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또 다른 아삽의 시편인 시편 74편도 바로 그런 기도다.
74편은 내용 상으로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 탄식(1-11절) – 탄식의 이유
- 확신(12-17절) – 확신의 근거
- 간구(18-23절) – 간구의 목적
우리가 왜 탄식해야 하는지, 무엇에 근거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를 오늘 시편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자.
“아삽의 마스길”
시편의 내용을 보면 배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BC586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사건이 배경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저자는 다윗 당시의 아삽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아삽과는 관계 없는 다른 아삽일 수도 있지만, 성전에서 계속해서 섬겼던 아삽의 자손 중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탄식(1-11절) – 탄식의 이유
1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먼저 이 시편은 비통한 마음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3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25절),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7-28절)라고 고백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의 불공정함을 체험했지만, 그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을 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그에게 참된 복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상황은 개인적 차원에서 그런 부침을 겪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인 재앙을 만났다. 나라가 망한 것이다. 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에 예루살렘 성은 폐허가 되었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부터 포로로 잡혀갔다.
바벨론은 당시 대국이었고 주변의 나라들을 점령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어떻게 보면 당연히 벌어질 일로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삽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으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주께서 기르시는 양”
그들은 그냥 여러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아삽의 시편에서 몇 차례 더 등장한다(78:52; 79:13; 80:1). 하나님과 백성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표현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보호자이며 인도자가 되심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2절에서는 또 이렇게 표현했다.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
여기서 아삽은 모세가 출애굽 후 불렀던 노래에서 사용한 표현을 가져왔다(출 15:13, 16). 하나님은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서 구속하시고 자기 기업의 지파로, 즉 자기 소유로 삼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회중”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렇게 특별했다.
따라서 이런 이스라엘이 이런 재앙을 만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불순종했을 때 종종 이방 민족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기도 하셨지만, 그것은 사랑의 매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아삽은 “영원히”라는 표현을 통해 이런 마음을 표현한다. 지금 상황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즉 완전히 자기들을 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는 그 연기가 꺼지지 않고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점령하고 파괴한 것은 바벨론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전의 언약을 파기하고 그들을 버리셨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구한다.
2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먼저 시편 기자는 “우리가 주의 백성인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구한다. 지금까지 흐름상 자연스러운 간구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질만한 내용은 그래서 그들이 지금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그들이 집을 잃고 포로로 잡혀가고 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나올만한 맥락이다.
하지만 아삽은 자신들의 그런 고통보다는 하나님의 고통에 더 주목한다. 백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고통보다 우선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나 모세가 그랬듯,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라고 구한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셨던 예루살렘, 시온 산, 성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한번 보라는 것이다.
3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여기 “성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나온다. “영구히 파멸된 곳”이 그렇고 “원수가 모든 악을 행하였”다는 표현이 그렇다. 성소는 거룩한 곳이고 기쁨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다. 그런데, 지금은 성소가 그렇지 못한 곳이 되었다. 아삽은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라고 구한다. 빨리 가서 한번 보시라는 말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지만, 지금 사안의 시급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4절부터는 실제로 원수들이 행한 악에 대해서 묘사한다. 아삽은 이들을 “주의 대적”이라고 하여 “주의 회중”인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그 대적들이 이스라엘과 하나님께 행한 악을 보고하듯이 기록했다.
4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여기 “떠든다”는 말은 자랑한다는 의미다. 즉, 예루살렘을 정복한 바벨론이 교만하게 자신들의 힘을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랑에 하나님과 그 백성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10절).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심장과도 같았던 예루살렘의 성전을 훼파했다.
5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자신들의 집이 무너지고 불타는 것보다 더욱 마음 아프고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소를 이방인들이 더럽히고 유린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부수고 불태웠던 것은 조각품이나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유평 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라. 그냥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교회가 있던 터에 어떤 유흥업소같은 것이 들어와도 기분이 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교회를 미워하여 의도적으로 교회를 쫓아내고, 이 건물을 사이비 교주에게 팔아넘겼다면 어떨까.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던 강단에서 사이비 교주의 거짓이 선포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소리가 가득하던 예배당에 교주를 찬양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 소리만 가득하다. 애찬 대신 술 자리가 벌어지고, 그 안에서 말도 안되는 성매매, 마약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런 모습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면 어떨까.
이 시편을 기록한 아삽이 보고 있었던 장면이 그런 것이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9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이런 상황을 자기가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리고 얼마나 이것이 지속될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함 속에 아삽은 탄식한다.
10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아삽이 탄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 나온다. 바로 하나님이 비방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패배를 하나님의 패배로 여호수아가 받아들였던 것처럼, 아삽도 지금 그들이 당하고 있는 이 수치와 조롱을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자기 이름을 두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절의 아삽의 질문은 여호수아의 질문과도 같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여, 이제 그 품에서 손을 빼시고 주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 원수들을 멸하여 주소서.
고통 가운데 아삽은 탄식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모욕 당하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아삽은 왜 하나님이 그렇게 되는 것에 탄식했을까? 앞서 유평교회의 예를 들었는데, 유평교회가 그렇게 된다면 누가 가장 괴로워할까? 유평교회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괴로워할 것이다. 유평교회가 그렇게 되었다는 공문이 다른 교회에 보내진다면, 어떤 사람들은 안타까워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냥 그렇게 됐나보다 할 수도 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럴 줄 알았다며 좋아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평에 있었던 성도라면 좀 느낌이 다를 것이다. 교회와의 관계, 교회에 대한 애정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마 이 교회에 오래 있으면서 성도들과 함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렸던 성도가 가장 괴로워할 것이다. 꼭 오래 있지 않았더라도 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소식에 괴로워할 것이다.
아삽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 탄식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임재를 두신 성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예배하는 것을 그가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큰 복이었고, 그것이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즐거운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무엇 때문에 탄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삽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탄식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간구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해결책도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께 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찾아 오시고, 그 품에서 손을 빼어 원수들을 멸하시면 된다. 그러면 된다고 아삽이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들에 있다.
확신(12-17절) – 확신의 근거
12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원수들은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처럼 조롱했고, 실제로 하나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처럼 조용히 계셨지만,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신 왕으로서 원하면 언제든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그런 분이시다. 아삽은 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해오신 일들이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13절부터 아삽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나열하는데, 여기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주께서”다. 아삽이 언급한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든, 이 일들은 놀라운 일들이며 이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13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14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15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
욥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들을 통해서 묘사한 것이다. 몇몇 표현들은 출애굽을 떠올리게 하지만 출애굽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출애굽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표현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을 것이다.
특히 여기 묘사를 보면 하나님의 파괴적인 능력에 대한 강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누고 깨뜨리고 부수고 쪼개고 마르게하고 하는 표현들이 그렇다. 아삽은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능력이 있으시고, 그것을 과거에 이미 증명하셨음을 이런 표현들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16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17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이 두 구절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고 땅의 경계도 정하셨다. 밤과 낮, 계절의 경계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13-15절에서 파괴적인 능력이 강조가 되었다면 여기서는 창조의 능력이 강조가 되어 있다.
이것이 아삽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근거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왕이시고 구원을 베푸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못해서 지금 조용히 계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든 하나님께서 그 품에서 손을 빼내시면 원수들은 잠잠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스럽게 다시 빛날 것이다.
사실 이런 확신이 애초에 1절과 같은 탄식의 기도를 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이성에서의 패배에 당황했던 것과 비슷하게, 아삽도 하나님이 여전히 이런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것은 알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버리신 것이냐고 질문했던 것이다.
아삽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 그것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기도는 이제 이렇게 분명하게 바뀐다.
간구(18-23절) – 간구의 목적
18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아삽은 지금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이 비방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 당하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구한다. 이것이 이 기도의 첫째되는 목적이다. 그의 탄식이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기에 그의 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다. 지금 위험에 처해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안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였다.
22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여기서도 이 백성의 원통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통함을 푸시라고 말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방당하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이 아삽은 자신을 포함한 백성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한다.
19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이스라엘을 멧비둘기로, 바벨론을 들짐승으로 표현하여 그 둘 사이의 힘의 차이를 대조한다. 다만 멧비둘기든 들짐승이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은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멧비둘기를 들짐승에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아삽은 그렇게 해달라고 구한다. 가난한 자의 생명을 구해주실 것을 구한다.
20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21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여기서 언약의 관계를 분명하게 언급한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기하신 것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 개입하셔서 바로잡아 달라는 기도다. 그렇게 해서 황폐화된 예배의 터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다. 궁극적으로 이렇게 간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아삽은 다시 한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 상기시킨다.
23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소리가 아닌 모욕하는 소리가 가득한 성소를 기억하시고, 이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 아삽의 마지막 기도다.
아삽의 기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아삽이 탄식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하나님의 백성이 모욕을 당하고 있었고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삽은 탄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아삽이 가질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셨던 일들이었다. 하나님은 파괴하기도 하시고 창조하기도 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왕이시다.
끝으로 아삽이 간구했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사람들에 의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모욕당하는 상황이 끝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가득하기를 아삽은 간구했다.
도전
나중에는 어떤 일이 우리에게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우리는 시편 74편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다. 눈에 보이는 적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짓밟고 무너뜨리고 예배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잘못된 복음이 전파되고 있고, 교회 밖에서는 잘못된 사상이 교회를 흔들고 있다. 성도들은 그 어느때보다 세상으로 눈을 많이 돌리고 있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넓고 튼튼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건물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그렇지 못한 때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다. 우리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 이전에 하나님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모욕 받는 것 이전에 하나님께서 모욕 당하고 계심을 생각해야 한다. 그 사실에 탄식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 다른 교회까지 갈 것 없이 나만 봐도 그렇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는커녕 해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인다.
우리를 보면 희망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계시록의 교회들도 그랬다. 주님께 아무 칭찬도 받지 못한 교회들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회복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언제 우리의 때가 끝날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기 전까지 우리는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하며 그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탄식은 그런 탄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지 못함을 탄식해야 한다. 그리고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이름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찬송이고, 그 찬송이 모일 때 그것이 우리의 예배가 된다.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