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도의 방법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7절~6장 2절
설교자: 염창훈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 심히 두려워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꼭 전도를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살다가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 다음에 지옥이 없다면 우리가 전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지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불도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받는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을 보면 둘째 사망 불못에 대해 말하면서 세세토록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이 사실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세세토록 나오지 못하고 살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8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죄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죄 없으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믿는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20절에 나오는 “우리”, 18절에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지만,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믿는 자들을 향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면서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을 선전하게 하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임무를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얼마나 막중한 임무입니까?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생각할 때, 첫째 변화된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처럼 살지 않을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삶의 소리가 너무 커서 당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의로운 분이고 사랑과 동정이 많으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이 예수님과 같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후가 생각과 행동이 같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좋아하던 사람이 죄를 싫어합니다. 어떻게든 선을 행하려고 합니다. 죄를 지을 때 괴로워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고 전도하려고 한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마음속에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3-24)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회개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향해 순종하며 따르려는 변화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부도덕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구원받고 마을로 돌아가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부끄러운 여인이 전도자가 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뒤에 ‘주님 보시옵소서 내 소유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겠으며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나 갚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보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기 쳐 도둑질하면 1/5만 갚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이 정말 믿는 자같이 살아간다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이 추천해주신 다큐 영상을 보았습니다. 직장암 말기임을 발견하고 수술을 하고, 곧 또 아내가 림프암에 걸려 역시 함암치료를 하고 고통 중에 있는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선한 간증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전도자의 말보다 그 삶이 귀한 복음의 증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전도는 없습니다.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는 삶으로 전도할 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말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메시지 말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라, 하나님을 믿으면 좋다’라는 말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죄 있는 우리 대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아무 죄 없는 주님께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던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데 예수님이 달리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알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 15:1-2)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 그리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복음의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하늘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따를 때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메시지를 마음으로 믿고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꺼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듣지도 않는데 말을 계속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불교나 이슬람교인을 만날 때 그들이 믿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로마서에의 3구절을 암송해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에 대해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죄인인 당신은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당신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주님께서 준비된 영혼을 만나게 해주셨을 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지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그리고 믿은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간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주변이 없어서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간증을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마태처럼 하면 됩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 친구들을 집에 초청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마태의 집에서 초청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십시오. 그리고 그 친구들과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들이나 목사님들을 함께 집으로 초대하십시오.
그것도 어려운 분들은 교회에서 복음집회를 할 때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라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고 말했을 때 빌립은 그에게 ‘와서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든 복음 전하는 방법 위에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도할 것을 강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안 믿는 이웃과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면서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사도 바울이 기도가 필요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사도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자신이 지옥에 가도라도 자신의 동족들은 지옥에 가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이 냉랭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지옥에 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은 부모의 범죄함으로 인해 죽음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아들을 위해 밤새도록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성도들에게는 갖은 친절을 베풀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몰차게 대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 가족들과 이웃을 위해서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기를 기도해야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말씀시간과 캠프에 참석하도록 독려해야합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복음을 들어야 구원받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주님 앞에 기도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사람들을 사귀고 전도해야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기독교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진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주님께서 막으셔서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려도 도망가지 않고 복음을 전해 영혼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을 통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저희 장모님도 한 달 넘게 병원에 계시는데 주님께서 이런 기회를 통해 형제들과 간병인, 같은 병실내의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더 어려운 환경일수록 복음을 전하기 쉬운 환경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암에 걸려 입원했는데 그 자매님의 밝고 평화로운 모습이 복음의 간증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통해 친분을 쌓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이 있고 복음을 전할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도할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어떤 교회에서 성도들이 둘씩 짝을 지어 노방전도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글을 못 읽는 할머니와 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짝이 되었습니다. 글을 못 읽는 할머니는 공원에서 한 청년을 만나 성경책을 주며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잘 들리지 않으니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청년은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다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날 노방전도를 나간 팀들 중에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 것은 그 두 할머니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주님께서 역사해주십니다. 우리가 잘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입을 열어야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해야합니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복음을 전할 자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우리 생이 다할 때까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항상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롯의 때, 소돔의 때와 같습니다. 또 우리 인생은 어쩌면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지요? 우리는 금방 70,80세가 됩니다. 저는 요양병원에 가서 희망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치매가 있는 분들은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지금이 구원받을 때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아직 주님을 믿지 않으신 분들은 지금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둔 성도님들도 지금 구원의 날에 기도하시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