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재물에 대한 잘못된 태도
본문 : 야고보서 5장 1절-16절
설교자 : 최 종 혁
1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재물, 돈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그것은 자체가 힘이 되기도 하고 권력, 명예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고자 할 때 그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 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 참된 믿음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시험이 있을 때 인내하는 것으로, 말씀에 대할 때 순종하는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며 비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오늘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의 믿음이 재물을 대할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재물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축복하는 수단으로 재물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악한 것,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말씀은 “들으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13-17절의 말씀은 상인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계획 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허탄한 것,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도 “부한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자신이 부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1절). 왜 부한 자들에게 고생이 임한다고 했을까요? 그렇게 되는 것이 단지 그들이 돈이 많았기 때문일까요?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2-3절). 부한 자들이 쌓은 재물이 어떤 것들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변해가는 것, 한계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한 마디로 땅에 속한 것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벧전 1:4). 바울도 이 땅에서의 상급은 썩을 승리자의 관이라고 했고, 하늘나라에서 얻게 될 상은 썩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시면서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고 하셨습니다. 부한 자들이 쌓아놓고 있었던 재물은 썩어질 것, 이 땅의 것, 변하는 것, 영원을 통해 볼 때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한 자들이 이 재물을 어떻게 모았을까요?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4절). 이들은 마땅히 줘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여기서 “주지 않았다”는 단어는 다른 뜻으로 ‘훔친다’, ‘속인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땅히 줘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은 훔치는 것과 같습니다. 도둑질은 일반적으로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을 말하지만, 가진 사람으로서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야 할 것을 주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도둑질인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은 임금체불에 대해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 19:13),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신 24:14-15). 당시 사람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만일 열심히 일했는데 그날 품삯을 못 받으면 그날은 굶어야 합니다. 그에게 딸린 식구들이 있으면 그 가족들도 굶어야 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체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6절). 여기서 “너희”는 부한 자이고 “의인”은 그의 품꾼을 말합니다. 도덕적인 의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무고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부한 자들은 죄 없는 사람을 정죄하였습니다. 품삯을 주지 않고 그를 죄 있다고 하여 자신에게 있는 의무(품삯을 지불할 의무)를 없앴습니다. 합법적으로 살인을 한 것입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부한 자는 더 얻고 싶어서 가난한 자, 힘없는 자를 합법적으로 죽였던 것입니다. 부한 자는 이 땅의 재물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재물을 쌓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5절). 그들은 이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기 위해,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자신을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했을지도 모릅니다. 귀한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아다니고 계절마다 다른 집에서 살았을지도, 가진 것이 많아 창고를 더 지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 자신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재물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 자기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으고, 그 모은 것을 원하는 일을 하는데 썼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탐심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썩어질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여기 부자의 모습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 3:1-2). 세상의 끝을 향해 갈수록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단지 부한 자들이 돈이 많다고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 땅의 것에 대해 보이는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1절). 그들이 울고 통곡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고생의 날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울고 통곡하라”는 것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함을 사람들에게 경고할 때 쓰던 말입니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 13:6)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겔 21:12).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곧 임할 것입니다. 부한 자들은 개인적으로도 이런 심판이 임할 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심판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바꿔놓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본문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재물을 축적하고 나를 위해 쓰고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삶입니다. 모두가 꿈꾸고 바라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 사실로 모든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영원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세상의 재물은 가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영원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죽음 뒤가 아닙니다. 바로 이 땅에 있을 때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오셨을 때는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로 오셨지 심판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요 3:17).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구원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심판자로 오십니다. 점점 그날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3절). 이 편지를 썼을 때가 이미 말세였습니다. 그 이후로 2천 년이 지났는데 주님의 오심이 얼마나 더 가까워졌습니까? 주님은 저 멀리서 천천히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문밖에 계셨습니다(9절). 당시에 문밖에 계셨으니 지금은 문고리를 잡고 계실지 모릅니다. 이 사실이 부자의 삶에 대한 평가를 바꿔놓습니다. 최고의 삶에서 최악의 삶으로, 부러운 삶에서 불쌍한 삶, 행복한 삶에서 불행한 삶으로, 기쁨의 삶에서 애통의 삶으로 바꿔놓습니다.
야고보는 심판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3절). 부한 자가 사랑했던 재물은 심판의 날에 심판받는 증거가 됩니다. 금과 은에 있는 녹은 그가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이 하늘의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것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부한 자들의 재물에 녹이 스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부자들의 마음이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말세의 때에, 세상과 마음을 살찌우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4절). 착취한 삯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부당함을 고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부한 자는 품꾼의 삯을 주지 않으며 기뻐하고, 합법적인 살인을 통해 자신의 뜻대로 된다고 좋아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봐야할 재판 장소는 바로 하늘의 재판 장소였습니다. 심판의 날에는 착취한 재물이 그들을 고소할 것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5절). 스스로 즐거워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마음을 살찌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을 “살륙의 날”로 표현합니다. 마치 도살할 날이 다가오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살찌우고 있는 어리석은 짐승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는 재물 때문에 심판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사랑했던 재물, 만족과 쾌락을 주었던 그 재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옵니다. 세상에서는 부러움을 사며 스스로 만족하며 살지 모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는 재물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말합니다. “울고 통곡하라”
여러분은 자신이 부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이 얼마나 부한가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많은 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치를 두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어떻게 재물을 모았고 사용했는지, 그 재물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가 영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부한 자”와 같다면 그는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의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보다 이땅에 재물을 쌓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시간을 이 땅의 재물을 쌓는데 더 투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주로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 내 자녀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하면서 자신에게 쓰는 것에는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기서 말하는 부한 자와 같습니다. 경제적 손실을 염려해서 사소한 법은 가볍게 무시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나의 삶이 그런 특징을 가진다면 여기서 말하는 부한 자와 같습니다. 야고보가 한 경고의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은, ‘심판이 임할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심판이 확실한 것을 알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부한 자들에게 경고하는 목적도 그것입니다. 이 땅에 가치를 두고 살지 말고, 믿는 자답게 이 땅의 것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경고의 말씀도 별로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재물이 주님보다 우선일리 없습니다. 영원을 바라보시고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