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도의 인내
본문 : 야고보서 5장 7절-12절
설교자 : 이 병 권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제 지구촌은 ‘강자’와 ‘약자’ 대신 ‘빠른 자’와 ‘느린 자’로 구분될 것이다. 빠른 자는 승리하고, 느린 자는 패배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속도입니다. 느린 것은 안 좋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느린 것은 경쟁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다림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인내하는 것을 잘 배우지 못합니다. 뭐든 빨리 빨리, 당장 그 결과를 봐야 되고, 참는 것을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기다림, 인내라는 덕목이 점점 더 매력을 잃어가는 오늘의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뜻하지 않은 고난에서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나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야고보는 오늘 우리에게 이것에 대해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5장에서 야고보는 먼저 부한 자들을 향해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형제들, 다시 말해 부한 자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가난한 자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던 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현재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계시지는 않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어려움, 견디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말이 안 통하는 권위적이고 꽉 막힌 상관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고 불안합니다. 우리 자매님들 어떻습니까?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그렇게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인생이 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속만 썩이고 있습니다. 자녀는 또 어떻습니까? 어릴 때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크니까 어떻습니까? 10대 자녀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에 이어폰 꽂고 인상 쓰고 있고,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습니다. 말을 안 들어도 너무 안 듣습니다. 자녀들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또 어떻습니까? 이기적이고 속 좁은 이웃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나의 연약함이나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될 때도 있고, 모든 것을 잊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 우리 마음을 억누르고 삶의 여유를 빼앗아 가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의 고난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이 크고 작은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야고보는 오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섯 개의 명령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참아야 합니다. 7절에서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명령합니다. 참으라는 것은 인내하며, 견디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어려움이나 고난 속에서 성급하게 포기하거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를 내며 난리를 치지 말고 참으라는 겁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어려운 길이 아니라 쉬운 길을 가길 원합니다. 힘들고 험난한 고난의 길보다 편한 길을 좋아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참고 인내하기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저주하고 내가 받은 대로 갚아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본성에 맞고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아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길이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참아야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하면 주님 오실 때까지는 어려움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어려움 속에서 인내합니다. 인생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과 계속되는 어려움을 꿋꿋하게 참아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인내의 값진 열매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원치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주님을 닮도록 빚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어려움 속에서 참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상황을 그분의 방식으로, 그분의 때에 해결하시도록 맡겨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때가 되면 주실 것입니다. 농부가 열매를 바라고 참으며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기다려야합니다. 참고 인내 하면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참으십시오. 참으면 그에 합당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기다림과 인내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수고를 아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 열매를 기대하고 길이 참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우리는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8절에서 야고보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굳건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세우다, 고정시키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움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지탱하고 받쳐 들 수 있도록, 마치 커다란 고가 도로를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강하게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 약속을 의지함으로, 내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힘든 시기가 지속되면, 우리는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고난의 상황이 계속됩니다. 그 속에서 참아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나는 어려움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습니다. 자꾸 왜?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는 거지? 때로는 자책하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힘든 순간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있는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 힘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완벽하게 제거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굳게 할 수 있는 것은 주의 강림이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회복되는 그날이 임박해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님을 기다리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굳건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으로,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그 약속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단단히 묶어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시멘트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시멘트는 그대로 있을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입으로 살짝 불기만 해도 흩어져 날리는 약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멘트에 물을 부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웬만해서는 부술 수 없을 만큼 아주 단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진리는 시멘트에 물을 붓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세워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을 볼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해보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어려움을 이기며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로 우리는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9절에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명령합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나의 마음을 바로 잡은 후에 우리가 할 것은 사람들을 향한 나의 태도를 바로 잡는 일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로 보이는 겁니다. “저 사람만 없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바로 저 사람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원하지 않는 환경이 주어지면,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럴 때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투덜대기도 하고 원망하게 되는 겁니다. 악한 본성을 가진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그런 우리에게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 된 본성을 따라 그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할 것입니다. 서로를 정죄하며 잘못을 떠넘기며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향해 쏜 원망의 화살은 더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오고,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날려버린 원망의 화살이 나의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박힙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너무도 자주, 너무도 쉽게 범하는 죄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참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원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망할 때 그 원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인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주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문 밖에 서계신다는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모든 준비를 마치시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도록 문고리를 손에 잡고 문 앞에 계신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분이 문을 열고 우리의 삶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원망하는 죄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인내하는 것이지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탓하기보다 심판주이신 우리 주님을 생각함으로 주님께 맡기고 인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넷째로 우리는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10절에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명령합니다. 야고보는 이제 실제로 고난을 인내하는 삶을 살았던 선지자를 예로 듭니다. 고난이나 어려움은 특별히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그 뜻을 행한 선지자들이 그러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너도 선지자를 본으로 삼아 고난 중에도 인내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를 전한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그러한 고난을 인내했고 사람들의 미움을 참았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이러한 선지자들을 생각함으로 현재의 고난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인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억압받고 학대를 받은 선지자들이 우리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어서 인내의 가장 좋은 본이 되는 욥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며 그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결국 갑절의 축복을 결과로 얻게 됩니다. 야고보는 선지자의 본을 따라서, 욥의 본을 따라서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도,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도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수건을 던지고 싶을 때도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다 내팽개치고 떠나고 싶을 때도 인내해야 합니다. 다 그만 두고 싶을 때도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결말을 보게 될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인내를 말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욥이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이 동일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의지함으로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지막 다섯째로 우리는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절에서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명령합니다. 맹세는 그 자체가 잘못되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맹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을 들어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결혼서약을 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본문에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무심코 남발하는 맹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맹세를 과하게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맹세의 대상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맹세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야고보는 이렇듯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함으로 조급함 속에서 나오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고난을 경험하고 있을 때, 그 중압감 속에서 성급한 결정과 약속을 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경솔하게 말하기 쉬운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넘기기 위해서 함부로 말하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때만 지나가게 해주신다면, 하나님 이것만 벗어나게 해주신다면”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그 말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정말이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장담하는데”, “하나님께 맹세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자신의 말에 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불러들여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 이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진실 되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맹세가 아니라 정직한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말이 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확신시킬 때 맹세가 아니라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사에 정직하게 행하고, 신뢰할 만한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말에 있어서 진솔해야 하며, 그 삶에 있어서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않은 세상은 맹세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맹세가 필요 없는 믿을 수 있는 삶과 그러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맹세가 불필요한 정직한 삶이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 맹세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며 그 삶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거짓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이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과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참된 믿음을 가진 자답게 맹세가 필요 없는 그러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합니다. 꽤 이름 있는 회사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자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응시한 사람들이 면접 장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면접관이 오지 않는 겁니다. 면접이 왜 늦어지는지 설명도 없고, 면접 온 사람들은 마냥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무슨 일일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그렇게 30분이 넘어가자 점점 사람들의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회사가 이 모양이야?”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유가 있겠죠. 좀 기다려봅시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참지 못해서 면접 장소를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 저기 전화를 걸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침내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우리는 한 시간 전부터 여러분을 면접했습니다. 다만 면접방법이 달랐을 뿐입니다. 면접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회사에서 일부러 그렇게 면접을 한 겁니다.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약속시간이 되자 이 사람이 정확하게 들어왔는지, 기다리는 태도는 어떠한지, 회사에 대한 반응과 기대가 어떠한지, 늦어지는데 대하여 그들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살핀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지는 않을까요? 여러분은 인생의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나의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한 가지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고난 중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셋째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로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가 필요 없는 정직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현재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눈부시고 희망적인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결론을 이미 맺어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결말을 미리 살짝 보여주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결론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놀라운 축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내하십시오. 인내하는 자가 정말 복된 자입니다.